지난 줄거리
부처님은 살인마인 앙굴리마라를 제도하는 등 활발한 전법행을 펼친다. 아난을 비롯해 마하빠자빠띠의 출가 등 수많은 이들의 출가도 이어진다.

쿠시나가르의 사라쌍수 아래서 반열반에 드신 부처님의 모습. 부처님은 이 세상에 궁극적인 진리의 길을 밝힌 큰 스승으로 남아 있다.
교단화합·중생제도 최우선시
쿠시나가르 사라쌍수 아래서 반열반

늘어난 출가자로 인해 승가는 북적거린다. 이런 승가에서 분란이 생겨나니 바로 데바닷타로 인함이었다. 데바닷타는 앞서 마가다국에서 아자타삿투로 하여금 부왕인 빔비사라왕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도록 부추겼다. 이 과정에서 자식을 사랑한 빔비사라왕이 억울하게 죽게 됐다. 데바닷타가 이런 악행을 저지른 데에는 불자였던 아자타삿투의 공양을 탐한 데 있었다.

부처님은 공양을 받더라도 부자와 가난한 이의 공양을 똑같이 여기라고 했다. 하지만 데바닷타는 달랐다. 아자타삿투의 호사에 마음을 뺏겨 결국 부처님을 몰아내고 승가의 주인이 된다면 더 큰 공양과 권력이 생길 것이라 여겼다.

데바닷타는 어느날 부처님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연세가 드셔서 힘드실테니 그 책임을 벗어버리고 은퇴하시지요. 상가의 경영은 제가 맡겠습니다.”
부처님은 마하카사파나, 목갈라나, 사리붓다 등 승가 내 연장자에게도 운영을 맡긴 바 없음을 들며 완곡히 거절한다.

데바닷타는 이에 승가 내에서 “부처님이 애지중지하는 비구는 모두 왕족이나 브라만”이라고 폄하하는가 하면 “부처님의 계율은 너무 헐거우며 고행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부처님은 이런 엄격한 고행주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중포교를 위한 방편이 필요함을 인정하신 것이다. 데바닷타는 동생인 아난다와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 마하카사파는 데바닷타를 승가에서 추방할 것을 공지했으며, 데바닷타는 따르는 비구들을 데리고 승가를 나오게 된다. 목갈라나와 사리붓다가 데바닷다의 승가로 가 사람들을 설득해 다시 데려왔지만 이로 인해 교단은 일시적으로나마 화합이 깨지게 됐다.

50회에서 데바닷타는 무서운 계획을 꾸미기 시작한다. 승가의 화합을 깨는 데바닷타를 아자타삿투가 멀리하기 시작했고 이에 부처님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입히려 한 것이다.

부처님을 해하려다 해를 입은 데바닷다의 모습
하루는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내려오는 길이었다. 데바닷타는 벼랑 위에 숨어 있다가 부처님이 아래를 지나는 순간 바위를 굴렸다. 하지만 그 바위는 부처님의 머리 위로 지나가고 부서진 돌조각이 부처님의 발가락에 약간의 피만 흘리게 했다.

드라마 속에서는 데바닷다가 바위를 굴리다 자신이 절벽아래로 떨어져 죽는 것으로 표현된다.

승가의 화합을 깨던 데바닷다가 사라진 후, 승가는 더욱 커지게 된다. 부처님이 아자타삿투에게 설한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일곱가지 방법’은 지금도 유효한 가르침이다.

첫째, 많은 사람이 모여 자주 회의를 열어 의견을 나눌 것. 둘째, 함께 집합하고 일을 시작하며 자신들이 해야 할 것을 행할 것. 셋째, 이미 정해진 것을 깨뜨리지 않으며 옛날에 정해진 오래된 법에 따라 행동할 것. 넷째, 노인들을 존경하고 환대하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을 것. 다섯째, 부인이나 아이들에게 폭력을 쓰거나 꾀어내지 않을 것. 여섯째, 조상의 사당을 존중하고 공경하고 공양하며 이전에 바친 공양물을 버리지 않을 것. 일곱째, 깨달은 수행자들을 올바르게 보호하고 깨닫지 않은 이들을 편히 머물 수 있게 할 것 등이다.
또 출가 전 어머니 생각에 고뇌하는 목갈라나를 위해서도 법문한다. 목갈라나는 매일 밤 어머니에게 다가가 먹을 것을 주려 하지만 음식이 불이 되어버리는 꿈을 꾸고 있었다.

부처님은 “어머니의 죄업이 뿌리가 깊다. 하지만 남은 삶을 평화롭고 의롭게 살고 그 공덕을 회향한다면 죄가 사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백중의 시작이다.

이런 목갈라나가 전법과정에서 순교하게 된다. 목갈라나는 수로나 국으로 전법을 떠났다. 여기서 목갈라나는 마을에서 질시하는 이교도를 만나게 된다. 전법행의 전에 부처님은 목갈라나에게 묻는다.

“그 지방 사람들이 성격이 흉악하다는데 만일 비난하고 비방하면 어떻하려는가?”

이에 목갈라나는 “지팡이나 돌멩이로 때리지 않는 것많으로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답한다.

부처님이 “결국 칼로 그대를 죽인다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목갈라나는 “인생의 온갖 고뇌가 따르는 것을 실허해 자신의 생명을 끊으려 한 자도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번거로움을 덜어 준 것이라 생각하겠다”고 답한다.

결국 어떤 고난도 각오하고 수로나국으로 간 목갈라나는 이교도의 손에 순교하고 만다.

부처님은 목갈라나의 순교 소식을 듣고 다시금 무상함을 느낀다. 그로 인해 부처님이 이 세상에 없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대중들에게 설법하게 된다.

“봉사의 삶 입니다. 이 진원이 모든 인류를 변화시킬 것이다. 모든 인류를 자비로 대하십시오. 부자든 빈자든 사람은 다 고통이 있습니다. 그 정도나 양이 다를 뿐입니다. 사랑하는 비구, 비구니여 오늘까지 내가 가르친 모든 것들을 제대로 잘 공부하도록 하고 체험하도록 하십시오. 공부를 게을리 마십시오. 먼저 자신에게 시험하고 사람들에게 나눠주십시오. 오늘 여기 모인 여러 비구, 비구니들은 궁극적 진리를 모든 이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각자가 확신이 들 때까지 의심하고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전한 말이라도 말이지요. 만물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매순간 깨달음을 향해 전진하십시오. 지금부터 석달 뒤 나는 열반에 들 것입니다.”

반열반에 들기 전 대중들에게 설법하는 부처님
또 법회에서 부처님이 연꽃을 들자 마하카샤파는 가르침의 뜻을 알며 눈물을 흘렸다. 부처님은 아난다와 함께 있는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말로 설명하는 것은 내가 비구들에게 말했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은 모두 마하카샤파에 전했다. 꽃 한송이의 기적을 우리가 명상 속에서 볼 수 있다면 우리 삶 전체가 달라질 것이다.”

부처님은 춘다의 공양을 받고 문제가 생긴다. 병든 몸을 이끌고 쿠시나가르에 도착한 부처님은 사라쌍수 아래에서 완전한 반열반에 들었다. 부처님은 떠나셨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영원히 우리곁에 남아있을 것이다. <끝>



리뷰 - 법현 스님이 본 드라마 ‘붓다’
신화적 붓다를 재구현하다

후반부는 대승사상도 섞여
교화 궤적 그리기엔 분량 부족

부처님은 19살에 야소다라와 혼인하여 29살에 아들 라훌라를 낳고 인생의 괴로움을 영원히 해결하는 길을 찾아서 위대한 걸음인 출가수행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선정삼매를 닦는 수행자들인 알라라깔라마와 웃다까라마뿟다 등의 가르침을 받아서 다른 이들보다는 아주 뛰어난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완전히 깨달음을 이룬 붓다가 되지는 못했다. 그래서 극심한 고통을 참고 견디는 고행을 해서 다른 수행자들에게 존경을 받는 경지에 이르렀으나 역시 깨달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쾌락은 말할 것도 없고 고행마저 깨달음의 씨앗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고행을 버리고 다시 그 때까지는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수행을 홀로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마도 위빳사나라고 하는 이치를 깊이 관하는 수행을 하여 바로 얼마전인 북방불교력으로는 음력 12월 8일 새벽, 남방불교력으로는 음력 5월 보름에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었다.

붓다가 되어, 자신을 오해하고 떠나간 다섯 수행자를 향해 가서 중도설법을 하고, 60여 명의 수행자를 제도하여 아라한이 되게 한 뒤 전법하게 한 내용이 <마하박가>〈승색경〉에 나오는 ‘신들과 인간의 이익을 위하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나중도 좋게 하라’는 전도선언으로, 이는 우리 불자들이 가슴깊이 새겨야 할 가르침이다. 이후 부처님은 석가족과 양 어머니 마하파자파티, 아내 야소다라를 비롯한 500여 비구니, 불의 신을 숭배하던 가섭 3형제 그리고 먼 나라에서 온 우리가 잘 아는 마하 가섭, 붓다의 두 다리 같다던 사리불과 목건련, 눈이 멀어서도 수행하여 도를 깨쳐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 제일인 아나율, 최하층 천민 출신으로 계율을 잘 지킨 우빨리, 스님들을 잘 지도한 사리불에 비해 신도들을 잘 지도하여 설법제일로 불린 부루나, 교리문답을 잘 한 가전연, 붓다의 아들이면서 온전히 수행을 잘하여 맘과 말과 몸이 늘 하나로 수행 잘한 라훌라 등 많은 제자들을 교화하셨다. 지역적으로는 석가족의 나라말고도 마가다, 바이샬리, 밧지, 코살라 등 큰 여덟 나라, 작은 여덟 나라 등으로 인도의 중원을 교화하였다.

드라마에서 이야기 하듯이 붓다의 생애에 커다란 마디는 탄생과 네 대문을 나가서 보았던 인생의 모습을 보고 궁극적 진리를 향한 출가, 수행 뒤 성도와 전법 그리고 열반이라고 할 것이다.

드라마 붓다의 뒷 부분은 초기불교의 가르침과 대승의 사상을 적절히 배합하여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뒷날 중국의 선불교에서 3처전심(三處傳心)이라고 전해지는 이야기가 사실적이면서도 흥미롭게 전개되었다. 설법하실 때 내린 꽃비의 연꽃을 들어 보이니 가섭이 미소 짓고, 부처님이 다자탑에서 설법하실 때 가섭이 두타행으로 행색이 초라하여 알아보지 못한 것을 부처님만 알아보고, 멀리 전법하러갔다가 늦게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니 다비가 시작되었다는 이 세가지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부처님은 살아서도 전법이요, 죽어서도 전법이어서 선불교에서 유정설법, 무정설법이라고 하는 양면의 설법을 선교방편(善巧方便)으로 보여주셨고, 그 절정이 수많은 사리로 출현하신 것이다. 사리를 여덟 나라가 공평하게 나누어 모심으로써 뒷날 아쇼카 대왕이 석주를 세우고 ‘붓다가 열반 하신지 몇 년 뒤 이 기둥을 세웠다’라고 써둠으로써 이 기록을 발굴한 사람들이 서구에서 신화적인 인물이라 추측하던 붓다를 역사 속에서 다시 보게 한 것이기도 하다.

부처님의 일생을 그린 드라마붓다는 다시 보아도 좋을 것이다. 55부작이라는 거대 프로그램이기는 하지만 부처님의 일생과 교화활동의 궤적을 그리기에는 충분하지 못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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