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절집의 빛 - 영주 성혈사 나한전 꽃살문

여섯 짝 꽃살문 중 대표적인 문양 네 짝. 어칸과 향우측 측면칸의 통판투조꽃살문이다.
통판투조꽃살문, 전국 열 곳 현존
통판투조 모란꽃은 생명의 나무
동자가 연꽃 든 천진난만 동화세계
민화풍의 다시점 화면

불교미술은 대자연의 생명을 인격화
불교 세계관은 일체가 제행무상(諸行無常)인 공(空)의 세계다. 스스로 온전하고 독립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은 허무주의적인 것과는 별개다. 본질적으로 모든 상(相)은 연기법에 의한 관계의 총체다. 만유의 실상은 관계에 의한 원융과 조화로움으로 현현한 상이다.

우주적 질서는 통일적인 유기체이며 하나의 세계일화(世界一花)다. 불교미술은 그러한 세계관을 방편적으로 구현한 구체적 시각화다. 연기법계의 화엄세계 경영이 불교미술의 근본이 될 수밖에 없다. 연기법의 진리체계야말로 모든 불교미술을 관통하는 본질이고 철학적 토대다. 시각적인 표상으로 구체화한 조형미술을 통해 원융과 조화의 세계를 관상(觀想)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화로움의 원형인 자연 속에서 조형미술의 유기적인 양식과 소재를 빈번히 빌려 온다. 심지어 진리법의 결집인 경전의 이름마저 한 송이 꽃을 빌려 ‘법화경’, ‘화엄경’으로 부를 정도다. 불교건축, 천정장엄, 탱화, 불단, 사찰벽화 등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대부분의 불교 조형미술이 연기에 의한 그물망의 구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현대미술이 해체를 통해 원형을 파괴하는 경향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나한전 통판투조꽃살문의 전경
불교의 미학은 우주적 질서와 대자연의 생명을 인격화 하는 특징을 가진다. 토인비의 지적처럼 불교는 범신론적 자연숭배와 깊은 연관성을 지녔던 사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화엄의 미술은 한 대상의 고유한 구체적인 미를 드러낼 뿐만이 아니라, 우주적 대자연의 조화로움도 동시에 표현한다. 화엄 만다라적 표현이다. 특히 사찰건축의 꽃살문, 불단, 천정장엄 등에서 연기법계의 조화로움의 미학이 두드러지게 표출된다. 영주 성혈사 나한전 꽃살문은 유기적 관계에 의한 생명의 통일성과 존엄성을 일깨운다. 하나의 문짝에도 우주적 질서와 본질을 담고 있는 것이다.

널판 통째 무늬 새긴 통판투조꽃살문
성혈사 나한전은 1634년에 중창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작은 불전이다. 편액은 나한전이지만 내부에 16나한과 함께 모신 주존불은 뜻밖에도 비로자나불이시다.

모든 생명의 통합과 조화의 근원은 비로자나불에 있다. 비로자나불이 법계우주의 진리 본원력인 까닭이다. 나한전의 창호는 정면 3칸에 칸마다 각각 2분합 여닫이문을 달았다. 여섯 문짝 모두 꽃살문이다. 여섯 문짝 중 세 곳은 통판에 조각을 한 통판투조문이고, 나머지 세 곳은 바탕문살이 30도, 90도, 150도로 전개하면서 사방연속 꽃문양을 무시무종으로 펼친 솟을꽃살문이다. 통판투조꽃살문은 널판에 꽃, 나무 등의 무늬를 통째로 새겨 문틀인 문울거미에 끼워 넣는 독특한 양식이다. 통판 그 자체가 창호의 살대 역할도 한다. 통판에 문양을 베푼 까닭에 평면적 회화성이 두드러지는 효과가 있다. 통판투조꽃살문은 선암사 원통전과 응진전, 강화 정수사 대웅보전, 상주 남장사 극락보전, 예천 용문사 대장전 윤장대, 설악산 신흥사 명부전, 삼척 천은사 약사전, 조계사 대웅전 등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공주 동학사 대웅전에도 사군자 통판투조문이 있었으나 몇 해 전에 영문도 없이 새 창호로 대체되어졌다.

통판투조꽃살문 중에는 통판만 있고 아예 살대가 없는 것도 있다. 정수사 대웅본전, 용문사 윤장대, 선암사 원통전 통판투조문이 그런 경우다. 성혈사 통판투조문은 모두 솟을꽃살문의 살대를 갖추고 있다. 정면에서 보면 그 사실을 판단하기 어렵지만, 내부에서 비춰보면 30도, 90도, 150도 방향으로 살을 낸 형상을 뚜렷이 볼 수 있다. 단지 바탕살이 부분적으로 통판투조와 일체형으로 새긴 것이 몇 군데 나타나는 독특함을 지니고 있어 이채롭다.

남장사 극락보전 통판투조의 경우는 바탕살과 통판조형을 서로 독립적으로 조성한 후 못과 철물등으로 결구한 형식이라 같은 통판투조꽃살문이라도 조형양식이 조금씩 다른 점이 있다.

어칸과 향우측 측면칸 꽃살문의 세부.
연꽃, 연잎, 물고기, 백로 등의 대화엄
나한전의 어칸 2분합문은 전형적인 통판투조꽃살문이다. 두 문짝에 좌우대칭으로 새긴 회화의 모티프는 생명력으로 충만한 연지(蓮池)다. 연지는 온통 연잎과 연꽃으로 장엄한 연화장세계이자 화엄세계다. 연지에는 연잎, 연꽃, 연잎, 연꽃...의 중층적 층위의 중중무진이다.이러한 연지의 중층적 구도는 예천 용문사 윤장대 연지꽃살문에서도 만날 수 있다. 연꽃의 형태는 다채롭고 변화무쌍하다.

오므린 꽃봉오리, 반쯤 핀 것, 활짝 핀 꽃, 꽃잎을 떨군 꽃, 연자방을 완전히 드러낸 것 등 천차만별이다. 연잎의 묘사는 대단히 사실적이고 찰라적 인상을 섬세하게 재빨리 포착해내서 감탄을 자아낸다. 활짝 펼친 잎, 바람에 오므린 잎, 뒤집힌 잎, 돌돌 감긴 잎, 꺾어진 잎 등 각양각색이다. 어떤 잎은 잎맥까지 예리하게 표현했다. 그 크기도 자연스럽게 들쑥날쑥해서 고저장단의 리듬감과 율동미를 느끼게 한다. 형태와 크기 변화로 화면에 생동감과 자연스러움을 살려내고 있어 신선하다. 저마다 독립적이면서 통일적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주체적 조화로움이 빛난다. 연잎에는 아직도 석록의 초록 안료 흔적이 남아 있다. 햇볕과 풍화를 덜받은 위쪽으로 갈수록 비교적 색채가 선연히 남아 연지의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연지의 푸르름을 보아 때는 7,8월의 여름 풍경을 공간배경의 모티프로 삼았을 것이다. 연지는 물의 세계이니 본질은 생명의 세계다. 연지에 온갖 생명이 깃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백로와 물총새, 개구리, 게, 물고기 등이 연지에 뛰어 들었다. 용 한 마리도 연지에서 여의보주를 막 움켜쥐려 하고 있다.

또 한쪽에는 한 동자가 긴 연꽃을 비스듬히 들고는 연잎에 앉아 있어 화면의 분위기를 천진난만하고 순수함의 동화세계로 이끈다. 어칸의 두 문짝은 대칭적이면서 등장 소재의 구성과 분위기를 달리해서 비대칭의 대칭적 구도로 변모시켰다. 왼쪽 화면이 고요하고 정적이라면 오른쪽 화면은 명랑하고 동적인 분위기다.
언어학자 소쉬르는 기호는 기의(記意)와 기표(記標)를 가진다고 분석했다. 기의를 시각적인 표상으로 구체화한 것이 기표이다. 연지의 자연은 기표적인 상징체계다.

기의는 생명력으로 충만한 조화로운 메트로폴리탄이다. 서로 관계하며 공존하는 상생의 합창이 울려 퍼지는 대우주 코스모스다. 우주적 생명력, 그것이 곧 법의 세계이고, 서로가 서로에 상즉입하는 연기법의 화엄세계다. 그 본질적 기의의 중심엔 비로자나불이 계신다. 성혈사 나한전 꽃살문은 비로자나불의 광명편조(光明遍照)의 본원력을 바탕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상의한 중중무진의 연기법계를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점이 꽃살문 조형미술에 담긴 정신적이며 교의적인 것으로, 기표 너머에 담긴 고차원적인 기의로 해석할 수 있다. 연지는 정토로 구현된 연화장세계다.

성혈사 나한전 전경
6폭 화면을 갖춘 민화 화조도 병풍
어칸의 두 문짝을 제외한 나머지 네 문짝은 모두 원형 사슬 테두리 속 육엽연화문이 반복되는 솟을꽃살문이다. 단지 맨 오른쪽 솟을꽃살문만 바탕살 위에 커다란 모란꽃 통판투조를 베풀어서 종교적 예경과 환희심의 깊이를 심화했다. 모란꽃의 중심에는 의장의 구조적인 뼈대 역할을 하는 굵은 줄기가 관통한다. 불교장엄의 꽃은 꽃이 지닌 물리적 특성을 넘어선다. 때때로 꽃은 우화의 상서이고, 예경으로 올리는 세세생생의 공양화이며, 처처에 나투신 부처님의 자리이기도 하다. 한 화면을 가득 채운 모란꽃에는 암수로 보이는 두 새가 다정히 노래하고 있다. 거룩한 생명의 나무이자, 그물망의 세계를 펼친 우주목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그러고 보면 나한전 꽃살문은 전체적으로 6폭 화면을 갖춘 민화 병풍을 떠올리게 한다. 우선 소재에서 민화의 화조도와 중첩되는 점이 뚜렷하다. 모란, 연꽃, 쌍쌍의 새, 물고기, 게등 등 소재들이 공통적이다. 또 화면을 그린 시점도 하나의 시점인 일점원근법이 아니라 다양하다. 위에서 본 것도 있고, 옆에서 본 것, 정면에서 본 것 등 세잔의 정물이나 피카소의 큐비즘처럼 다시점(多視點)으로 화면을 구성해서, 보이는 것을 그린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을 그린 형태를 추구했다. 그것은 민화 책가도에서 자유분방한 시점을 구사한 방식과 일맥상통한다. 화면에 흐르는 소박함과 천진난만함도 민화의 화풍과 겹치는 대목이다. 불교철학이 민화풍의 화조도 꽃살문에 스며들었다. 통판투조로 장엄한 연지는 공존과 관계의 그물망에서 저마다 생명의 존엄으로 빛나는 화엄의 세계다. 모든 생명의 무게는 같다. 성혈사 나한전 꽃살문은 관계와 만유의 존엄성을 일깨우는 그 절집의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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