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오늘은 바깥이 아니고 실내입니다.”

그동안 조계종 사회노동실천위원회가 출범한 후 대부분의 활동은 현장 내지 야외에서 이루어졌다. 그때마다 불교계를 비롯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실천위원스님들의 이름과 얼굴, 활동내용들이 공개되었다. 그러자 이런 활동을 긍정하고 응원하는 목소리보다 스님들이 정치적으로 뭐하느냐?’부터 보여주기식 이벤트 좀 그만하고 본분으로 돌아가세요!’ ‘결국 되지도 않을 것인데 너무 애쓰지 마세요등 부정적인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실천위원스님들은 각종 이익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장소도 불사하기에 자칫하면 위원회 활동이 특정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이기 쉽다. 또 그 일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되는 무관심한 이들이나 특정 배타적 타종교인들은 미간을 찌푸리기 일쑤였다.

직책 그대로 실천위원스님들은 현장서 민중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기도와 정진으로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하며 밝은 길을 모색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일반인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어수선할 수 있고, 특히 발언(매 모임 때마다 한두 분의 스님께서 모임취지나 목적 등에 대한 의견과 소회를 피력하는 의식)을 서로 사이좋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면서 준비가 덜됐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다. 그런 실천위원회가 주변의 잡음 때문에 시작도 못해보고 해체될 것 인가?’하는 우려도 있었다.

▲ 그림 박구원.

처음 시작은 늘 설레고 힘듭니다. 힘냅시다라는 말로 서로를 다독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일신상의 문제와 수행이라는 명목으로 몇 분들은 탈퇴의사까지 내비쳤다. 그리고 탈퇴의사를 밝히지 않더라도 법회모임에 참석하는 분들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올 초 20명 내외로 시작했던 실천위원스님들은 반년이 조금 지나자 절반으로 줄었다. 물론 대부분의 실천위원스님들은 지방에 있는 사찰에서 소임을 맞고 있어 시간내기가 쉽지 않고, 그런 스님들의 배려 차원에서 모든 모임에 강제성 없이 자율적으로 참석하며 참석여부만 미리 공지하는 식으로 운영되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

하지만 이 모든 조건과 상황 이전에 실천위원스님들의 실천목적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법회인원이야 상황에 따라 조금 늘고 줄어들 수 있으나 스님 한 분만이 참석하더라도 20여 명 스님들 마음과 하나 되어 한 목소리로 불보살님들과 사부대중을 포함한다면 소위 일당 백 아니 천, , 만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실천위원스님들 한 분, 한 분께서 당당하게 행동했는가?’를 돌아보는 것이 급선무다. 스스로를 이해시키지 못하는 자는 타인도 이해시킬 수 없다. 수행자의 근본은 수행이므로 지금 하는 일들이 수행이라는 이론적 근거가 확실할 때만이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혹여 흔들리더라도 재빨리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원만한 실천을 위해서 이론을 돌아볼 기회, 그것이 바로 사회관련 세미나나 토론회였다.

작은 나로부터의 자유와 큰 나로서의 평등을 실천하기 위해 수행이론을 근본으로 강요하기보다는 설득의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토론회를 통해 매번 보여주었다. 지금 하는 일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고 모나지 않게 실천하고 있다면 우리 스스로도 변할 것이고, 이 글을 보는 스님들과 사부대중의 시선이 우려와 냉소에서 호응과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언젠가는 성취될 것이다. 성취될 때까지 계속하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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