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 작고한 권혁주 바이올리니스트

좋은 스승에게 배운
많은 가르침들을
대중에게 회향했던 혁주야
네가 벌써 그립구나

지난 1012일 아침, 후배작곡가 차은선 씨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그는 전화로 선배님, 권혁주 씨가 사망했습니다라는 비보를 전했다. 너무 놀라고 믿기지 않아 즉시 김의명 교수에게 연락했다. 통화연결음이 울리는 그 짧은 시간에 오보이길 바라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전화를 받은 김의명 교수는 혁주 소식 듣고 연락했어요?”라고 답했다. 현실은 잔혹할 만큼 냉정했다.

지난 여름, 강원도 인제 동국대 만해마을에서 만해축전준비위원회가 지원하는 ‘2016 설악바이올린학교 & 음악캠프에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할 때 권혁주 씨는 팔꿈치에서 고름이 나와 가을쯤 수술을 한다고 얘기를 들었다. 대관령 국제음악제 등 연주 일정이 많아 그러잖아도 걱정하고 있던 터였다.

천재 권혁주를 처음 접한 것은 그가 세계적인 콩쿠르에 여러 차례 입상하고 러시아와 독일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금호아트홀에서 공연을 하면서다. 니르바나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면서 불교계에도 공연 전문기획사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카사 엔터테인먼트를 창업하면서 사업이 확장되었고, 평소에 존경하는 김의명 교수가 이끄는 JK쳄버오케스트라를 관리했다. 권혁주는 JK의 악장이자 솔리스트로 활동하면서 더욱 가까워 질 수 있었다. 그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어도 불평을 하거나 본인이 원하는 개런티를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로지 묵묵히 연주만 했다.

권혁주는 늘 말이 없었다. 눈을 마주치는 정도가 인사의 표현 전부다. 과묵하고 말이 없지만 수줍고 사슴과 같이 순수한 눈망울을 가졌다. 불교계에서 전문적인 음악 인재를 찾기가 매우 힘들고 그나마 이웃 종교인들은 활동을 꺼려하는 실정이기에 공연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에 고충이 많다.

권혁주는 이에 개의치 않았다. 칠장사 산사음악회, 니르바나오케스트라의 아프리카 여성 돕기 소녀자선음악회, 쿠부치 사막화 방지 환경 음악회 등 중요한 공연에 함께해 왔다. 작년부터 실시하는 만해축전의 일환인 청소년을 위한 설악바이올린학교에 주요 강사로서 활약해 왔다.

음악과 참선은 유사점이 많다. 함께 하기도 하고 혼자하기도 한다. 길 없는 길을 혼자서 무소의 뿔처럼 간다. 냄새도, 형체도, 색깔도, 답도 없는 길을 선지식의 가르침을 참고삼아 가다가 결국은 그마저 버리고 가야 하는, 그래서 지독한 자기와의 싸움이다.

권혁주 역시 유복하지는 않았다. 다만 주위에 한국 바이올린계를 이끄는 스승들이 있었다. 스승들의 도움으로 성장했던 그는 모든 것을 언제나 대중에게 회향하리라는 서원을 실천했다. 어떤 공연도 마다하지 않았고, 어디든 찾아갔다. 그는 마지막까지 공연을 준비하며, 불꽃처럼 자신의 생을 살았다.

장례식장에는 수많은 한국음악계의 대가들이 줄지어 문상했다. ‘마지막 모습에서 그 사람의 삶을 알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을 상기한다면 권혁주가 가지는 한국 음악계에서의 위치는 매우 컸다.

수많은 불자들도 그의 공연 때마다 환호했다. 이번 비보에 많은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생각보다 많은 팬 층이 형성돼 있음을 실감했다. 이제는 권혁주를 더 이상 공연장에서 만날 수 없는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다. 권혁주 영가시여 이제 이승의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마음의 짐을 훌훌 버리고 평안히 극락왕생 하소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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