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아스카데라(飛鳥寺)

아스카데라의 본존불인 아스카다이부쓰. 일본 최초의 사찰인 아스카데라는 백제 도래인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대불 역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금동불상이다.
내가 가끔 일본에 오는 한국인 친구들과 즐기는 것이 나라(奈良), 교토(京都) 등 간사이(關西) 지역을 함께 답사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나라 아스카에서의 답사가 최고라고 생각된다.

아스카는 오사카에서 전차를 타고 가도 멀지는 않지만, 차창 밖 풍경은 오사카와 완전히 다르다. 높은 빌딩도 없거니와 큰 아파트도 없어 그야말로 산과 논밭이 펼쳐진 시골 풍경이다. 순간 여기가 옛날 나라의 중심지였단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그래도 자전거 타고 여기저기 다니다보면 고분(古墳)이나 사찰을 통해 아스카가 원래 번영했고 깊은 역사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된다.

한반도 도래인 아스카에 정착
불교 건축·기와·온돌 등 전래해
아스카데라, 백제 도래인 참여
한국 부여와 분위기 비슷 ‘친근’


일본의 본격적인 사찰로서 가장 오래된 아스카데라(飛鳥寺)의 현재 주소는 ‘아스카촌(明日香村) 아스카(飛鳥)’이며, 마을 이름이 한자로 ‘아스카(明日香)’이다. ‘비조(飛鳥)’는 나는 새라는 뜻인데 원래 일본식 한자 발음으로는 아스카라고 발음하지 않아 특별한 이름이다.

자료에 의하면 아스카를 비조(飛鳥)로 쓰는 이유가 옛날 어떤 시(詩)에 아스카에 대해 묘사한 것이 있는데 시의 시작이 ‘나는 새의 아스카…’ 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나는 새(飛鳥)를 아스카의 상징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마치 나는 새처럼 비행기 타고 한일 양국을 자유롭게 왕래하지만, 비행기가 없었던 옛날에도 배를 타고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사람이 있었다. 바로 도래인(渡來人)이다. 5세기 이후 아스카에서는 한반도를 기원으로 하는 토기나 건물, 온돌 등 도래인의 흔적이 많아졌다고 한다.

<니혼쇼키(日本書紀)>에 의하면 도래인 기술자들을 아스카 마을 시마노쇼(島庄, 현재 이시부타이고훈 주변) 부근에 정착시켰다고 한다. 도래인들은 건축, 야철(冶鐵), 방직, 토기, 문서 작성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고 일본 문화와 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6세기에 들어 백제에서 불교도 전래했다. 지금은 일본에서 불상을 배례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지만 당시에는 큰 충격이었음을 상상할 수 있다. 숭불파(崇佛派)인 호족(豪族) 소가 씨(蘇我氏)와 배불파(排佛派) 호족인 모노노베 씨(物部氏)와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결국 숭불파가 승리하면서 588년에 소가 씨의 발원(發願)으로 아스카데라의 조영(造營)이 시작되고 596년에 창건됐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 탄생한 것이다.

아마카시노오카에서 바라본 아스카데라. 지금은 작은 사찰이 됐지만, 역사성은 매우 깊다
아스카데라의 본존은 일본 최고(最古)의 금동불상이고 중요문화재인 ‘아스카다이부쓰(飛鳥大佛, 석가여래좌상)’이다. 아스카다이부쓰에 대해서는 절의 안내서에 한국어 설명이 있어 인용한다.

“본존 아스카 불상은 605년 천황과 쇼토쿠타이시, 소가노 우마코 및 각 왕자들의 발원으로 609년에 구라쓰쿠리노도리(止利佛師)에 의해 만들어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이다. 높이는 약 3미터로, 당시 동 15톤과 황금 30킬로그램을 사용해서 만들어졌다.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85)와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1185~1333)의 대화재로 전신이 불에 타 후에 보수되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아스카 조각미가 여전히 남아있으며 세부적으로도 상당히 확실한 아스카의 특색이 전해지고 있다.”

대화재로 전신이 불에 탄 이후에 보수되었다고 하는데 근래의 신문기사에 의하면 그때 보수됐던 것이 아닌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전한다. 최근의 대불 성분 분석 결과 대불 대부분이 아스카시대 그대로인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앞으로 어떤 연구 결과가 나올지 기대된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창건 당시의 건물이 다 없어져 당시의 장대한 절의 모습을 볼 수는 없다.

1956년에 사찰을 발굴 조사한 결과 당시는 오층탑을 중심으로 금당이 북쪽뿐만 아니라 오중탑 동쪽, 서쪽에 하나씩 있는 특이한 가람 배치였다고 알게 되었다. 이것을 ‘일탑삼금당형식(一塔三金堂形式)’이라고 부른다. 이 가람 배치는 고구려 청암리사지를 모델로 만들었다고 생각해 왔지만 최근에 백제 왕흥사나 신라 분황사 등 사찰도 삼금당 배치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아스카데라 조영(造營)을 시작한 당시 백제에서 스님과 절을 짓는 데 필요한 기술자가 파견되어 왔다. 이 가운데 기와 박사도 있었다. 아스카데라를 조영하기 전엔 일본에 기와가 없었다고 하는데 지금 일본 여기저기에서 기와집이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이 백제의 와당문화가 전래한 덕분이다.

내가 아스카와 백제의 깊은 관계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아스카데라에 있는 작은 전시실이다. 여기에 전시되어 있는 연꽃무늬 수막새가 이것을 조용히 증명한다. 나는 부여에 가본 적이 있는데 왠지 외국이 아닌 나의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부여에서 나는, 연꽃무늬를 비롯하여 도래인들이 일본에 준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또 부여에 가고 싶어졌다. 아스카데라를 지었을 때 만들어진 기와는 1,400년 지나간 지금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헤이조쿄(平城京) 천도의 8년 후인 718년에 아스카데라도 헤이조쿄로 옮겨지고 현재 나라시내에 있는 간고지(元興寺)가 되었다. 당시 아스카데라의 기와도 옮겨지고 간고지의 본당(本堂)과 선실(禪室)에 일부 기와가 사용되었다. 빨간색 부분이 아스카시대 기와이다. 간고지는 도다이지(東大寺)나 고후쿠지(興福寺)에서 멀지 않아 가기 쉽다.

창건 당시 장대한 모습이었던 아스카데라는 9세기와 12세기 대화재로 가람도 소실되었다. 오랜 기간 폐사(廢寺)였던 아스카데라는 1632년과 1826년에 재건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아스카데라는 호코지(法興寺), 간고지(元興寺)라고도 불려졌는데, 지금은 안고인(安居院)이라고도 부른다. 안고인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하여 찾아봤더니, 연구 자료에 의하면 17세기 절이 재건됐을 때 아스카데라에 은거했던 스님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은 작은 사찰이 되었지만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고, 한국과 일본 간의 깊은 관계를 느낄 수 있는 아주 좋은 사찰이다. 많은 한국 분이 아스카데라를 찾아갔으면 좋겠다. 
 
아스카데라 주변 볼거리
▲아마카시노오카

아스카데라 서쪽에 아마카시노오카라고 부르는 높이 148m인 언덕이 있다. 아마카시노오카 일대는 아스카데라를 발원한 소가 씨와 관련이 있는 곳이다. 백제계 도래인 출신이라는 설도 있는 소가 씨는 언덕이 요새 역할을 한다고 보았고, 아마카시노오카를 부여 부소산처럼 생각했었다고 한다. 아마카시노오카에 올라가면 유명한 야마토산잔(大和三山)인 우네비야마(畝傍山), 미미나시야마(耳成山), 가구야마(香具山)가 잘 보이고 아스카데라도 볼 수 있다.

아마카시노오카 전경

▲아스카시료칸(飛鳥資料館)
아스카에 대해 전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아스카시료칸에 가는 게 좋다. 아스카는 원래 아스카데라 뿐만 아니라 사찰이 많았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고 그냥 유적지가 된 곳도 적지 않다. 그러나 자료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적지에서 발굴된 이런 유물을 통해서 아스카 역사를 엿볼 수 있고, 또한 한반도와의 깊은 관계도 알 수 있다.

이시부타이고훈

▲이시부타이고훈(石舞台古墳)
아스카데라에서 30분 정도 걸어가면 이시부타이고훈에 도착한다. 이시부타이고훈은 일본 최대급 석실을 갖고 있는 사각형의 무덤(方墳)으로, 7세기 초에 축조되었다고 추정된다. 원래 봉분에 덮여 있었지만 흙이 없어지고 거대한 석실이 드러난 상태이다. 노출된 돌 무게는 무려 2300t이라고 한다. 누구의 묘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당시 정권을 쥐었던 아스카데라를 발원한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의 묘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아스카 답사 어떻게?
아스카는 볼거리가 많은데다가 거리가 떨어져 있어 자전거 타고 답사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여기는 길이 좁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야 되고 길 찾기도 쉽지 않아 평소에 자전거를 자주 타지 않는 분들에게는 자전거 답사 말고 걷는 것을 추천한다. 가시하라진구마에역 동쪽 출구 쪽에 아스카에 갈 버스 정류장이 있다. 1시간에 1번 정도. 계절마다 다르다.

나카노 요코 씨가 직접 그린 아스카 지역 탐방도
가시하라진구마에역 → (버스 약 10분) → 아마카시노오카 정류장 → (걷기 약 10분) →아마카시노오카 꼭대기 → (걷기 약15분) → 아스카데라 → (걷기 약15분) → 아스카시료칸→ (걷기 약 40분) → 이시부타이고훈 → (버스 약30분) → 가시하라진구마에역

관람과 식사시간을 포함해서 5-6시간 정도 걸린다. 아스카는 볼거리가 정말 많아 시간 여유가 있으면 다른 유적지에 가는 것도 좋다. 식당이나 매점은 별로 없지만 이시부타이고훈 주변에 몇 개 모여 있다. 나는 이시부타이고훈 가까이에 있는 아스카노유메이치(明日香の夢市)를 좋아한다. 여기서 아스카 농산품이나 잼, 과자를 사는 것이 아스카 답사 즐거움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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