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문 없는 문을 찾기 위해서 지금 공부하는 겁니다

 

모든 걸 중심을 두고 사신다면
어떠한 괴로움의 상처도 가실 수 있고
어떠한 괴로움의 구덩이 속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질문자1(남) 제가 여기 스님 앞에서 다 고백하는데요, 올해 37세 먹은 노총각입니다.

큰스님 그러세요?

질문자1(남) 예.

큰스님 그 색시들이 다 어디로 갔남? (대중 웃음)

질문자1(남) 그런데 제가 지금 여기 앉아 있지마는 참, 남의 집 귀한 딸들에게 눈물을 많이 흘리게 했습니다.

큰스님 미리, 장가도 안 들고 미리요? (대중 웃음)

질문자1(남) 그것 때문에 참 죄의식도 많이 느끼고, 그게 또 어떻게 계기가 돼 가지고 스님 말씀도 이렇게 배우게 됐는데요,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잘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남자 여자 따로 보이고, 또 여자도 예쁜 여자하고 좀 안 예쁜 여자하고 차별이 많이 보입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경우가 아직까지도 있거든요. 이런 부분, 저 역시 알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또 성도의 길을 갈 수도 있겠지마는 지금은 확실하지 않은데 앞으로 계속 주변 사람들 피해를 주면 안 되니까 눈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이 잘못된 버릇을 빨리 좀 고치고 싶습니다.

큰스님 네. 참 좋으신 말씀 하셨어요. 더도 덜도 말고 당신 같은 사람만 꼭 얻어요. (대중 웃음) 왜냐하면 내 분수에 넘치게 올려다봐도 안 되고 내려다봐도 안 됩니다. 단, 당신에게 걸맞고 아리따운 마음씨를 가진, 그저 아주 예쁘지도 않고 아주 못생기지도 않고, 그냥 마음씨 알뜰한 사람 이런 사람을 만나시도록 하세요. 이 마음공부라도 열심히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됩니다. 그럼 뭐, 엊그저께 만났던 사람도 쑬쑬하지 않아요? (대중 웃음, 박수)

질문자1(남) 감사합니다.

큰스님 이 모습으로 몇 알갱이나 살다가 가겠습니까? 우리가 아름다운 마음씨로 모두에게 자비를 베풀고, 극치적인 모든 일들의 이미지를 아주 말갛게 귀정을 짓고 가야, 요다음 생에 또 모습을 해 가지고 나올 때 대통령도 될 수 있고 소통령도 될 수 있고 그렇죠. 하하하….

질문자2(남) 질문 올리겠습니다. 대구에서 왔습니다. 얼마 전에 이 한마음 법을 알게 되어서 굉장히 생활이 즐거워졌고, 또 직장 생활에서도 여러 가지로 당당한 그런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실질적으로 불교를 접한 것은 한 15년 됐는데 그동안 제가 생각해 보니까 스님 말씀처럼 수박 껍데기 핥는다고 상당히 노력을 많이 해 왔습니다. 이 법을 알고 나니 정말 수박을 쪼개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또 그런 체험 가운데 즐거움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비록 이것이 시작이지만 이 생에 뭔가를 꼭 한번 해 보겠다는 의지가 스님 법문 들으면서 확고하게 들기도 합니다.

오늘 제가 한 가지 질문드리고 싶은 것은, 가장 세속적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인 돈 문제인데요, 이 문제에 대해서 저도 많은 생각을 해 봤고 또 고민을 해 왔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욕심, 탐심 이것 때문에 사람들이 돈을 구하고자 하는데 그 돈이 결국은 우리 삶에 있어서 떠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고, 뭐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일으키는 문제가 되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서원과 욕심과 탐심이 구별이 안 됩니다. 어떤 때는 이것이 서원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탐심 같기도 하고, 그래서 불교를 믿는 네가 돈에 대해서 욕심을 내면 그게 제대로 믿는 건가 하는 내면의 이야기가 들리기도 하고 또 그런 이야기를 주변에서 듣기도 하는데, 이 서원과 욕심이나 탐심을 불교하고 연관지어 여쭙고 싶습니다.

큰스님 하하하…. 우리들이 같이 살고 있지만 돈이 없으면 참 궁하고 괴롭고 그렇죠. 그런데 묘한 법이 있습니다. 돈을 꼭 써야 할 때는 돈이 나오게끔 만드는 방법이 있죠. 남한테 꾸러 가지 않고 돈을 쌓아 놓지 않고도 어느 거든지 내 것 아님이 없이, 내가 쓸 때가 되면 딱 나오게끔 말입니다. 하하하…. 그런 방법을 몰라서야 어찌 부처님의 길을 따른다고 하겠습니까?

예를 들어서 내가 ‘아, 이거 바가지가 없어서 물을 풀 수가 없는데….’ 이러면 벌써 주인은 알고 ‘어, 바가지가 있어야 내 심부름을 하겠구나!’ 이러고 바가지를 덜컥 갖다 주는 거예요. 그러지 않는다면 돈이 당장 없을 때, ‘돈이 없는데 이거 참, 어떡해야만 돈을 만들어서 쓰나. 어떻게 해야만 이걸 갚나.’ 하고, 그냥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에게는 돈이 빼꼼히 들여다보다가 달아나가요. 저 집으로 내가 들어갔다가는 그냥 찢기고 온통 야단나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돈도 사람의 마음도 몸도 모두가 일거수일투족 한마음이 돼서 그 가운데서 다스리는 주인이 다 하게끔 돼 있어요.

옛날에 이런 점이 있었죠. 이 법당채를 지을 때 말입니다, 돈 한 푼 없었죠. 그랬는데 이런 집 한 채를 갖다가 그냥 털컥 내려주시는 겁니다. 이거 무슨 뜻인지 모르시죠? 그러더니 사람들이 돈을 그저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이게 된 겁니다. 오래 끌지도 않고요. 만약에 내 사사로운 욕심을 내서 이거를 그냥 움켜쥐려고 했다면 이거 안됐습니다. 이거는 모두의 집이기 때문에 된 겁니다. 그래서 마음을 넉넉히 쓰라고 하는 겁니다. 내가 욕심을 부려서 돈 없다고 돈을 생기게 해 달라고 원을 한다면 그건 안 되죠.

그러나 내가 없는 것을 그 자리에서도 알고 있기 때문에 갖다 줄 거라는 거, 네가 형성시켰고, 네가 움죽거리게 하고, 살게 하고, 심부름을 시키면서 심부름꾼에게 돈을 안 줘서 심부름을 못하게 한다면 어떻게 하느냐 이거예요. 아, 그놈이 다 시키는데. 그러니까 그놈한테다가 딱 맡기고 콧방귀 콱 뀌라고요. 아, 무슨 걱정입니까? 예를 들어 주인이 있고 하인이 있으면 하인은 그 주인의 심부름만 하면 그뿐이지, 돈이 없고 있고에 무슨 참견을 하느냐 이겁니다, 네? 살림할 게 없으면 주인이 어련히 줄까 봐. 아, 주인이 주면 하고 주인이 주지 않으면 안 하면 될 거 아닙니까? 그런 마음을 가져야 나중에는 진짜 주인이 돼 버리는 거예요. 주인도 없고 하인도 없고 진짜 그 가운데 그냥 자기가 자유스럽게 하는 거죠.

불을 지피는데 말입니다, 젖은 나무로 불을 지피느냐 마른 나무로 불을 지피느냐에 따라서 쏘시개가 덜 들어가고 더 들어가고 하죠. 그러니까 마른 나무와 젖은 나무에 똑같이 불쏘시개를 한다면 젖은 나무는 안 타요. 그렇죠? 마른 나무는 불쏘시개를 조금만 해도 타 버리는데 젖은 나무는 불쏘시개를 똑같이 갖다 놓고 하더라도 그 불쏘시개만 홀랑 타 버리고는 안 타죠. 그거와 같은 겁니다. 우리가 수행이 어느 정도 돼 있어야 나무가 말라서 잘 타는 것과 같고, 수행이 돼 있지 않다면 아주 젖은 나무와 같아서 안 타죠. 그러니까 아직도 껍데기에, 즉 말하자면 타의에서 구하는 습성이 많이 있으니까 그것을 녹이려면 아예 진짜로 무조건 믿고 그렇게 해 보세요. 그러면 훨훨 탈 테니까요. 꼭 그렇게 하실 수 있겠죠?

질문자3(남) 스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제 한 해가 지나가면 저는 56세가 됩니다. 신사생인데요, 제가 이런 말씀 드리게 된 것은 제가 살아온 것이 인생의 실패작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저로부터 간접 경험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저는 어려서 기저귀에 싸여서부터 해남 대흥사(大興寺)에 다녔습니다. 할머니 등에 업혀서요. 내 나이 때만 하더라도 무녀독남이면 귀한 손이라고 그랬습니다.

그것이 좀 입력이 잘못돼 가지고, 저는 서울법대를 오수해서 들어갔습니다. 죽을 고비도 네 번을 넘겨서, 연탄가스에 중독돼서 죽다 살고, 옻칠한 상에서 밥을 먹다가 옻이 올라서 그러고 뭐, 여러 가지 사고가 연달아 나서 네 번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제 고등학교 동기들이 하여튼 서울법대를 8명 들어왔으니까 좀 괜찮다는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거기 입학할 때는 수석도 했고 그래서 자신 있어했는데, 내가 들어간다, 내가 시험을 친다고 했기 때문에 떨어졌다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실패도 했고, 또 사법시험을 본다고 하면 계속 사고가 나서, 열한 번을 쳤는데 1980년도에는 집안어른들이 돌아가시고 여러 가지 일도 있었고 해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으니까, 가솔도 있고 그래서 사법시험을 그만뒀습니다. 그러면서 그것도 인연이었는지 요가다 지압이다 경락이다 해 가지고, 산간벽지에 가서 고시공부를 하다 급체한 사람, 병들어 있는 사람을 돈도 안 받고 한 번만 만져 주면 다 나았는데, 막상 내 문제는 하나도 되는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생 실패작이라고 했습니다.

고시에 뜻을 두었다가 20년 실패를 했고, 그다음에 동창회 모임을 십 몇 년을 하다, 불사에 관련된 좋은 사업이라고 해서 돌산을 시작했는데 한 2년 전에 애당초의 방향과 틀려져서 그 돈을 가계수표다 카드다 해 가지고 지난 5월 31일에 몽땅 갚아 주었지만, 그것이 구르고 구르고 이자가 이자를 낳고 해서, 지금 아주 높은 이자와 함께 현재 빚이 한 1억 5천 정도 돼 있습니다. 그 일만 잘 풀리면 되기는 되는데 풀릴지 안 풀릴지도 모르겠고, 지난 11월에는 집도 절도 없다는 말처럼 자식과 마누라하고도 헤어졌고, 집도 다 넘어가 버리고 그래서 조계종 절은 아닙니다만 보살이 운영하는 조그만 암자에 가서 그야말로 의탁해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11월경 큰스님께서 간접적으로 <고에서 벗어나는 길>을 전해 주셔서 그걸 읽고 마음을 정리하면서 지금은 그전보다는 많이 좋아진 편입니다.

어려서부터 불법에 인연을 맺고 귀의를 했습니다마는 과거의 너무나 잘못된 입력들로 인해 또 지금 제 수행력의 부족으로 인해서 이렇게 나쁜 결과가 왔습니다. 또 아까 말씀드렸듯이 손이 귀한 집안이었기 때문에 사법시험은 안 돼도 대는 이어 달라 했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되더라고요. 딸만 둘 내리 낳은 데다가 집사람이 자궁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도 있지만, 숙원이었기 때문에 새 사람을 얻어서 아들은 겨우 하나 낳았습니다마는 그렇게 해서 얽혀진 문제들이 많습니다. 91년도에는 업보성이었는지 당뇨하고 폐결핵이 겹쳐서 세 번 죽었다가 겨우 살아났고, 좀 좋아지는 과정에서 좋은 일이라고, 모두 불자를 위한 일이라고 해서 책임지고 했다가 실패했던 것을 업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거기 매여서 휘말렸는데, 이제는 업보라는 생각보다는 ‘이제 다 잘되었다. 당신이 했으니 당신 책임이다.’ 하고 마음은 그렇게 먹는데 아직 과거의 습성 때문에 그렇게 잘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큰 가르침 주십시오.

큰스님 우리가 말입니다, 산을 가로질러 끊더라도 거기 지신과 더불어, 보이지 않는 관리인하고 같이 한마음이 돼 주어야 아무 기탄이 없고, 하다못해 나무를 한 그루 자른다 하더라도 그 나무와 더불어 나하고 한마음이 돼야 그 나무 물체는 잘라 버려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매사 걸 자기가 한다고 그냥 모두 날쳤으니 뭐가 됩니까? 그리고 어머니 때부터 믿으신 것도, 믿어서 결정을 짓지 못할 거라면 애당초에 믿지나 말 것이지 그냥 이리저리 벌여 놓고, 여기 떠 놓고 빌고 저기 떠 놓고 빌고 해서, 오히려 마구니를 끌어들여 가지고선 해결을 못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법우님들은 그 무엇을 하시더라도 오직 주인공에 맡겨서 모두 하게끔 하라 이겁니다, 어떠한 문제가 일어나도. 만약에 소를 잡지 않으면 안 돼서 소를 한 마리 잡는다 하더라도 주인공에 맡기고 잡았을 때는 살생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의 살은 모든 사람들에게 약이 되고, 또 소의 근본은 바로 무명을 쳐서 나한테 집어넣었으니 사람이 된 거죠, 금방. 금방 내가 된 거죠. 그래서 한번 굴려서 재생이 돼서 사람으로 인도환생을 한다면 그거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다 좋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모든 것을 거기 수레에 한번 굴려서 내놓으면 그렇게 공덕이 된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까 하여튼, 어렵고 가난하고 무질서하게 살지 마시고 모든 걸 중심을 두고 사신다면 어떠한 괴로움의 상처도 가실 수 있고 어떠한 괴로움의 구덩이 속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됩니다.

질문자3(남) 한 말씀만 더 드리겠습니다. 물론 한마음 입장에서 보면 똑같겠지만요, 지금 저와 같은 무수한 중소기업이 쓰러지고 있습니다. 물론 대기업도 쓰러지는 때가 있겠죠. 그래서 저와 같은 이런 불상사가 나지 않도록 하려면 우선 그 쓰러질 가능성 있는 많은 중소기업이라든지 다른 기업, 중간기업들을 위하여 어떤 마음을 내서 어떻게 관을 해야 되겠습니까? 제가 아픔을 아니까 같이 아팠으면 하는 그런 생각에서….

큰스님 이거 보세요. 예를 들어서 거지를 돕는 데 어떻게 해야 제일 잘 돕겠느냐 하는 거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거지라는 습성이 있어서 그냥 그렇게 자꾸 잘못돼 돌아가고 얻어먹기만 하게끔 만드는데, 만약에 거기에다가 보태 주기만 한다면 그 일이 또 벌어집니다. 그러니까 아예 뿌리를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가만 두는 겁니다. 가만 둬도 잘돼 갈 겁니다. ‘가만 둬도 잘돼 갈 겁니다’ 하는 소리 속에는 뜻이 있습니다, 꼭. 그것이 진리요, 그것이 시대적으로 변화하는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에 따라서 그런 게 생기죠, 모두가.

질문자4(남) 큰스님, 고맙습니다. 저는 광주지원 청년회에서 왔습니다. 큰스님 법문 중에 문을 찾되 보이는 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문 아닌 문을 찾으라고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뜻을 헤아려 보면 ‘진리란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고 또 진리를 찾아가는 방편 또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행을 하고 공부를 하더라도 보이고 잡히는 걸로 하지 말라’ 그렇게 제가 듣고 하고 있는데, 그러나 또 가다 보면 항상 보이는 걸로써 자꾸 저를 돌아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걸로써 그 문 아닌 문을 찾아야 되는데 또 넘어질 때는 안 보이는 걸로 자꾸 넘어집니다.

큰스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문 아닌 문을 찾되 문 아닌 문은 어디에 있는 것이고, 또 어떻게 찾는 것이며 그 문 아닌 문, 그 안에서 내가 도대체 무엇을 찾아야 되는지, 비록 법문 중에 큰스님께서 백번 천번 말씀해 주셨습니다만 다시 한 번 새기는 심정으로 큰스님께 질문드립니다.

큰스님 몸뚱이로서는 문을 꼭 찾아서 들어가야 들어갈 수가 있죠?

질문자4(남) 네.

큰스님 그런데 마음은 말이에요, 지금 이 자리에서 나가려면 어떻게 나가야 마음이 나가죠? 지금 이 자리에서 집에 갔다 와 보세요. 어디로 나가야죠? 마음이 문을 찾아나가야 될까요, 그렇지 않으면 그냥 나가야 될까요. 난 여기서 저 건너 내 방이 있는 데를 그냥 벽도 봇장도 없이, 생각할 것도 없이 그냥 나가지는데…. 저 건넌방 가는 것이나 지구 전체를 도는 사이가 같은 사이에요. 다른 우주나 태양에, 또 다른 혹성에 간다 하더라도 차이가 나지 않아요. 한생각 딱 하는 거하고 차이가 나지 않거든요. 그러면 내 몸속에서 수없는 입자가 만약에 벽도 없고 봇장도 없이 그냥 나간다면, 문도 없이 나간다면 어떻게 생각해요? 그거를 두고 ‘천백억화신이 나툰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이 됐다는 것만 해도 아주 최상의 첨단이죠. 그래서 인간이 마음으로 자기 속에 있는 그 모든 의식을 입자로 내보낼 때 그렇게 한계가 없죠. 그런데 무슨 문이 필요합니까? 문은 이 몸뚱이, 모습이 있는 걸로 족하지 진짜 무슨 일을 하려고 한다면 문을 찾아다니면서 무슨 일을 합니까, 한계가 있는데. 그래서 옛날에는 창과 칼과 활을 썼는데 그 뒤에 어떻게 됐습니까? 총, 대포 뭐, 심지어는 로켓까지 올라가고 말이에요,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그 외에 또 그것보다 더 광대한 문제를 어디서 가져와요? 그리고 빛보다도 더 빠르고 한계에 부딪치지 않고 가고 올 수 있는 거, 가고 옴이 없이 가고 올 수 있는 거는 마음밖에 없거든요.

그러니 문을 찾으며 배우려고 하지 말라. 문을 찾으며 공부하는 자는 학으로, 지식으로, 이론으로 찾는 거고, 우리가 이 마음공부를 하는 건 문이 없는 문을 찾기 위해서 지금 공부하는 것이다라는 얘기죠. 그러니까 한번 그렇게, 마음은 문을 찾지 않아도 아무 데고 문이 된다는 거, 은산철벽도 문이 된다는 거, 깊은 물도 문이 된다는 거, 허공도 문이 된다는 거, 그냥 어디고 문 안 되는 게 없어요. 그리고 나 아니 되는 게 하나도 없고요. 하다못해 미생물까지도. 그렇게 나 아니 되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걸 부처라고 이름했고 공덕이라고 이름을 했죠. 공덕! “일산(日傘)의 공덕은 크고 작음도 없이 그렇게 크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죠. 열심히 하세요. 자기 주인공만이 할 수 있다고 하는 반면에 그 주인공이 문이 되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문이라야 되는 거지 딴 구멍은 없어요. 과거, 미래를 둘 아니게 마음대로 자유자재할 수 있는 문은 그 문밖에 없어요.

사회자 질문이 없습니다.

큰스님 오늘 여러 법우님들하고 같이 도반으로 한자리에 앉았던 것을 진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지구, 우리 집이라고 할 수 있죠. 그 집이 망가지거나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중생들의 생명이 살 수 없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하고 있는데, 그 지구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공부하다 보니까 ‘아! 이제 그런 것을 걱정 안 해도 되겠구나. 사람들이 모두 그런 것을 알고 생각하고, 그래도 거기다가 놓을 줄 아니까, 우주 천지에 직결이 돼 있으니까 다 알고 다 수습하겠구나. 괜찮겠구나. 부딪치지 않겠구나. 줄지 않겠구나. 팽창되지 않겠구나. 에너지가 없어서 못 살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나 참 거룩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그냥 공부한다고 하면서 그거는 모르고 계시지만, 여러분이 그 마음을 쓰는 데서 연방 직결이 돼 있거든요. 연방 직결이 돼서 가설이 돼서 통신이 되거든요, 우주하고도요. 여러분은 그걸 모르고 하지만 차차 공부를 더 하면 알게 돼요.

※위 법문은 대행 스님께서 1996년 1월 7일 법형제 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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