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불 수놓다

선묵혜자 지음|시간여행 펴냄|2만 5천원
[현대불교=김주일 기자] “붓다가 첫발을 내딛은 룸비니 동산에서 인류 평화를 위해 타오르던 그 평화의 불. 히말라야 설산과 티베트 중국의 혜초 돈황굴 타클라마칸의 거친 사막과 서해바다 수천 수만리를 걷고 걸어서 마침내 그대가 임진각 평화누리 광장에 환히 밝혔네…(중략)…그대가 가슴에 안고 온 평화의 불은 붓다의 자비의 불꽃이며 우리의 간절한 염원이었네. 이젠 깊은 적막의 밤과 오랜 분단의 벽을 뛰어 넘어 얼어붙은 우리의 마음을 환히 밝혀 주소서” 〈선묵혜자 스님의 ‘평화의 불’ 중에서〉

3천년째 꺼지지 않는 ‘영원의 불’
2013년 혜자 스님 평화의 불 이운
108평화보궁인 서울 도선사에 안착

불경 대신 평화 찾으러 천축으로 가다
부처님 탄생지인 네팔 룸비니에는 ‘평화의 불’이라는 이름의 아주 특별한 불이 있다. 전 세계 53국에서 각각 피워올린 불을 하나로 합친 ‘UN 평화의 불’과, 네팔의 영산 히말라야에서 자연 발화하여 3,000년째 한 번도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고 있는 ‘영원의 불’을 합화한 것이다. 세계평화에 대한 전 인류의 기원을 담은 이 불은 자비와 평화의 화신으로서 이 순간에도 세상에 빛과 온기, 평화에의 희망을 뿌리고 있다.

남북관계가 부쩍 경색된 지난 2013년, 한 스님이 이 ‘평화의 불’을 한반도에 가져와 그에 담긴 자비와 평화의 마음을 방방곡곡에 퍼뜨리자는 서원을 세웠다. 1,300년 전 신라 스님 혜초가 불경을 이 땅에 가져오기 위해 머나먼 천축으로 향한 것처럼, 선묵혜자 스님과 ‘108산사순례기도회’는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기도와 순례의 길을 떠났다. 『발길 닿는 곳곳마다 평화의 불 수놓다』는 그 평화의 불 이운의 여정을 글과 사진으로 엮어낸 책이다.

곳곳마다 평화 전하는 2만 km여정
저자인 선묵혜자 스님은 지난 2006년부터 지금까지 10여 년간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원들과 함께 전국 방방곡곡과 세계 각지의 명찰을 돌며 기도 수행을 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불교계 국제 교류에도 앞장서, 네팔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이운하거나 학교를 세우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 왔다. 이번에 룸비니 ‘평화의 불’을 나눠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네팔 정부와의 이런 특별한 인연 덕분이다.

네팔의 람바란 야다브 대통령의 손으로 우리 순례단에게 공식 전달된 평화의 불은 티베트- 신장위구르-파키스탄 국경지대-타클라마칸 사막-투루판-둔황-난주-서안-청도를 거쳐 뱃길로 한반도에 이운되었다. 20,000k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거리. 여정마저 수월한 곳이라고는 없다. 당장 무너질 듯한 절벽 위의 해발 5,000m 도로, 소리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깊은 협곡, 햇빛이 이글거리는 사막…. 고산증으로 고역을 치르거나 사막을 건너다 불씨를 담은 화로에 피부를 데기도 한다. 청장열차를 탈 때는 규정상 화로를 들고 탈 수 없어 해프닝도 겪는다.

하지만 수행자 일행의 발걸음을 가장 무겁게 하는 것은 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다. 평화의 불이 지나는 곳곳마다 수행자 일행은 가난, 내전, 정부의 압제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이 모든 여정 속에서, 수행자는 품에 안은 평화의 불에 사람들의 기도와 희망을 갈무리한다. 동시에 그 불씨에 담긴 마음을 세상에 퍼뜨리고자 한다. 서안에서는 쓰촨성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을 위한 법회에 참여하고 귀한 평화의 불을 분등한다. 오직 평화에 대한 간절한 소망으로 멀고 험한 길을 걷는 선묵혜자 스님의 여정에는 부처님의 자비심과 평화 정신을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에 전하고자 하는 수행자의 발원이 깃들어 있다.

평화의 불을 채화하고 있는 (사)108산사순례기도회 회주 선묵혜자 스님(사진 가운데)
현대판 〈왕오천축국전〉에 담긴 평화 메시지
수행자와 순례단, 모든 이들의 간절한 발원을 모은 평화의 불은 무사히 한국에 도착한다. 그리고 한반도 정전 60년을 맞아 열린 ‘분단의 벽을 넘어 평화를 꿈꾸다’ 행사에서 힘차게 우리 하늘을 향해 타오른다. 이후 평화의 불은 108평화보궁 도선사에 안착해 평화를 염원하는 많은 이들의 방문을 받고 있다. 선묵혜자 스님은 이후에도 평화의 불을 전국 60여 곳의 기도 도량과 충주 중앙탑 공원, 해외 사찰 등에 분등하며 자비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인류에게 불은 언제나 희망의 상징이다. 사람들은 불을 만나면서 빛과 온기를 얻었고 문명을 일으켰으며 불 앞에서 화합을 이뤘다. 과학이 한없이 발달한 지금에도 그 의미와 상징성은 변함이 없다. 올림픽 성화를 봉송하는 주자에게 환호하며, 연인과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서, 촛불을 밝히고 광장에 모여서……. 불 앞에서 우리는 늘 조금 더 행복한 내일,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 과거 분단으로 고통받아왔고 지금 어려운 때를 겪고 있는 한반도이지만, 많은 이들의 기도가 담긴 ‘평화의 불’은 언젠가 모두가 함께 손을 잡고 평화를 일구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저자 선묵혜자 스님은?
서울 삼각산 도선사서 청담대종사를 은사로 출가 수행자의 길에 들어섰다. 양산 통도사 강원에서 경학을, 송광사 선원서 수선안거를 했으며, 불교신문사 사장, 호국참회기도도량 도선사 주지를 역임했다. 현재 전통사찰 108 평화 보궁 수락산 도안사 주지와 (사)108산사순례기도회 회주,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의 평화와 남북의 평화 통일을 위해 부처님 탄생성지 룸비니 동산에 있는 평화의 불을 한반도로 이운해 임진각 평화누리 광장에서 ‘분단의 벽을 넘어 평화를 꿈꾸다’라는 대법회를 봉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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