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고후쿠지(興福寺)

일본 국보로 지정된 도후쿠지 동금당과 오중탑 전경. 폐불훼석의 아픈 역사가 있지만 다시 복원돼 위용을 찾았다.

2009년도에 도쿄국립박물관과 규슈국립박물관에서 고후쿠지(興福寺)의 ‘국보 아수라전(國寶 阿修羅展)’이 개최되었다. 도쿄에서 관람한 사람이 94만 6000명 이상에 달했고, 그때까지 일본 미술을 대상으로 한 특별전으로서는 역대 가장 많은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았다. 규슈 관람객은 71만 명이상이었다. 이 숫자는 과거 규슈에서 개최한 모든 특별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모인 신기록이었다. 도쿄와 규슈를 합쳐서 무려 165만 명이 아수라상 특별전을 관람한 셈이다.

고후쿠지 봉안된 국보 아수라상
도쿄·규슈 전시에 165만 명 몰려
日 가장 사랑하는 불상 슈퍼스타
후지와라 가문 사찰였던 고후쿠지
유신이후 폐불훼석으로 폐사되기도
아픔 딛고 복원 불사, 현 사격 찾아

아수라상은 일본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슈퍼스타이다. 국보 아수라전에서 아수라상 뿐만 아니라 고후쿠지의 뛰어난 불상들도 전시되었지만 전시회 타이틀이 될 만큼이나 아수라상은 고후쿠지를 대표하는 불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수라상 팬클럽도 있다니 이제 일본 국민의 아이돌이 되었다.

고후쿠지는 강대한 세력을 갖고 있었던 귀족 후지와라(藤原)씨의 가문 사찰(氏寺)였다. 7세기에 후지와라 씨의 시조인 나카토미노 가마타리(中臣鎌足)는 정변 때 공을 세우고 후지와라라는 성을 하사받고 후지와라노 가마타리가 되었다.

후지와라노 가마타리의 유언에 따라 가마타리 아내가 당시의 수도였던 현재 시가현(滋賀賢)에서 가까운 교토 야마시나로 추측되는 위치에 야마시나데라(山階寺)를 조영했다. 야마시나데라는 천도에 따라 아스카(飛鳥)로 옮겨져 우마야사카데라(坂寺)가 되었다. 710년에 헤이조쿄(平城京) 천도에 따라 가마타리 아들인 후지와라노 후히토(藤原不比等)가 우마야사카데라를 현재 고후쿠지가 있는 위치로 옮기고 나서야 비로소 오늘날의 고후쿠지가 되었다.

후히토 누나, 딸이 천황과 결혼하고 황자와 황녀를 낳았다. 후지와라노 후히토는 이렇게 황실과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절대적인 권력을 갖게 되었다. 후지와라씨는 황실과 함께 고후쿠지 가람을 정비하고 금당, 오중탑, 강당 등 건물을 잇달아 지었다. 나라시대 전기에 국가적인 불교 행사를 치르는 큰 사찰이 4개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고후쿠지였다. 원래 귀족 사찰로 시작한 사찰이 이렇게 큰 힘이 있다는 사실은 매우 이례적이었는데 이만큼 고후쿠지가 번성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가람이 완성된 후 화재가 자주 발생해 피해를 입었다. 특히 11세기에는 거듭된 화재로 주요한 당탑이 모두 다 소실되었지만 후지와라 씨의 절대적인 권력에 힘입어 빨리 복구되었다. 고후쿠지는 가까이 있는 후지와라씨의 가문 신사(氏神社)인 가수가샤(春日社)와 신불습합(神佛習合)이라는 생각으로 일치화되어 더 많은 장원(莊園)을 거느리고 야마토(大和, 현재 나라현) 일대에 군림했다.

그런데 오늘날 고후쿠지에 가보면 오중탑과 건물 몇 채만 남아 있다. 게다가 담장도 없어서 숭고한 사찰 경내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나는 도다이지(東大寺)나 나라국립박물관에 가끔 가는데 고후쿠지 경내는 단지 도다이지나 박물관 쪽에 갈 때 지나가는 길이라는 인상까지 있다. 오랫동안 나라 일대를 지배했고 뛰어난 불상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고후쿠지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15세기 전기부터는 다행히 300년 동안 대화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1717년에 강당의 등명접시에서 발생한 화재로 주요 건물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그 당시 고후쿠지는 과거 같은 재력도 없고 후지와라의 힘도 없어서 일부 건물만 재건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타격이었던 것이 1868년에 메이지(明治)정부가 포고한 신불분리령(神佛分離令)을 계기로 일어난 폐불훼석(廢佛毁釋)이었다. 신불분리령은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신도국교화(神道國敎化)를 실현시키려고 거행된 정책이었다. 신불습합이란 신도와 불교의 일체화를 부정하고 신도를 원래 외래 종교인 불교에서 독립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신불분리령이 폐불훼석으로 발전했고 일본 여기저기에서 불상을 파괴하거나 승려 환속을 강제하는 일이 벌어졌다.

고후쿠지는 가수가샤 신관(神官)이 된 승려도 적지 않아 책임자로서의 승려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정부는 고후쿠지를 폐사(廢寺)하기로 결정했다. 담장이 잇달아 헐렸고 법당건물들도 해체되거나 철거되었고 심지어 다른 시설로 전용된 건물도 있었다.

오중탑은 250엔(현재 250만엔 정도)으로 팔려고 했다. 그러나 해체할 비용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오중탑을 불태우고 구륜(九輪) 등 금속만 가져가려고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주변의 주민들이 불이 크게 번질 것을 우려해 반대했다. 오중탑은 이렇게 살아남았다. 복잡미묘한 세속의 이해관계가 지금 국보로 지정된 오중탑을 볼 수 있게 만든 이유라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다행스럽기도 하다.

귀중한 불경, 기록, 문서는 가게 상품 포장지가 되어버렸고 훌륭한 불상은 파괴하거나 팔리거나 해외에 유출된 것도 있었다. 고후쿠지에 남은 불상은 당우에 거칠게 처박혔다. 당시 이런 상태를 찍은 사진을 보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해외에 유출되든지 누군가의 소장이 되든지 살아남은 것 자체가 다행이다. 유출된 불상을 지금 당장 볼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만나보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1880년엔 고후쿠지의 넓은 경내지는 나라공원이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고후쿠지를 복원하자라는 목소리도 커지고면서 살아남은 당우의 수리와 공원화 된 경내의 정비가 진행되었다. 공원화 된 경내지는 점점 고후쿠지 경내지로 회복되어졌고 지금도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다. 그럼 지금 우리는 고후쿠지의 귀중한 보물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올해 관람 상황에 대하여 소개 한다.

사찰에 있는 아수라상 관람 포스터. 도후쿠지 아수라상은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불상이다.

국보나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고후쿠지 보물들이 주로 1959년에 완성된 국보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올해 이곳이 수리중이어서 국보관 관람은 어렵고 경내에 있는 가리코도(?講堂)에서 봄, 가을에 참배할 수 있다. 관람시기는 3월 15일~6월18일, 9월 15일~11월 19일(9:00~17:00)이다. 아수라상을 비롯한 팔부중상(八部衆像), 십대제자상(十大弟子像)을 포함해서 26점이 전시되니 꼭 놓치지 말길.

팔부중상과 십대제자상이 원래 서금당(西金堂)이라는 당우에 봉안되어 있었다. 이번 가리코도의 전시는 현전하지 않는 서금당 공간을 재현하는 것인데 정말 감동적이다. 서금당이 후지와라노 후히토 딸인 고묘(光明)황후가 어머님을 추모하기 위해 734년에 조영한 것이다. 이 시기를 덴표(天平)시대라고 부르는데 729~749년 무렵에는 훌륭한 불상이 많이 탄생한 불교 예술이 꽃 피는 시기였다.

오중탑 옆에 있는 국보 동금당(東金堂)은 연중무휴로 관람할 수 있다. 여기에 올해 국보관의 휴관으로 국보관에서 동금당에 옮겨 안치되는 불두(佛頭)가 있다. 높이 1m 가까이 되는 이 불두는 수기한 운명을 겪고 지금 우리에게 고운 얼굴을 보여준다. 화재로 몇 번이나 소실된 동금당이 그 때마다 복원되었지만 수리가 필요해져서 1937년에 해체 수리를 시작했다.

수리가 시작된 지 2개월 가까이 지난 어느 날 저녁. 본존 대좌 내부에 불두가 있는 것이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 날 동금당에서 작업을 했던 발견자 일기에는 놀라움, 흥분, 감동의 말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 불두는 원래 아스카 야마다데라(山田寺)에 안치되었던 것인데 고후쿠지에 옮긴 후 1411년 동금당이 화재로 소실되었을 때 머리만 살아남아 화재 이후 복원된 동금당 새 본존 대좌 내부 상자에 넣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이 불두는 685년 제작한 불상이었다는 것을 자료로 알게 되었다. 하쿠호시대 불상가운데 자료로 제작년도가 밝혀지는 것이 드물어 귀중한 불상이다. 또 이 불두처럼 파손된 불상으로서 국보로 지정된 것도 드물다. 이 만큼 이 불두가 걸작인 것이다.

고후쿠지는 가마쿠라시대 뛰어난 불상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1180년에 병화로 고후쿠지 경내가 불바다가 되어 나라시대, 헤이안 시대 불상이 거의 다 재가 되었다. 그 후 고후쿠지 복원 가정에서 가마쿠라시대 불사가 활약했고 가마쿠라 조각을 대표하는 불상들이 탄생했다. 국보로 지정된 가마쿠라시대 불상 가운데 절반 가까이 고후쿠지에 있다니 고후쿠지가 가마쿠라 조각의 보고라고도 할 수 있다.

4월 22일~5월 7일, 국보 호쿠엔도(北円堂)에서 천재 불모(佛母) 운케이(運慶)의 걸작을 볼 수 있다. 9월 26일~11월 26일에는 도쿄국립박물관에서 고후쿠지 중금당(中金堂) 재건 기념 특별전 ‘운케이’가 열린다. 난엔도(南円堂)에 안치되어 있는 국보 사천왕상 모두 사진 촬영을 하기 위해 3월 초 고후쿠지를 떠나 도쿄에 갔다. 운케이 명작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니 많은 사람이 찾아가게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8월26일~10월10일에는 국보 오중탑, 국보 삼중탑 초층 내부도 공개되니 시기에 맞춰 방문하는 것도 좋다.


 

고후쿠지 주변 볼거리

고후쿠지에 가면 고후쿠지 남쪽에 있는 나라마치(奈良町)에 가보길 권한다. 아스카데라를 소개했을 때 해이조쿄 천도에 따라 아스카데라가 해이조쿄로 옮겨 간고지(元興寺)가 되었다고 했는데 나라마치는 옛날 간고지 경내지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다.

전통 가옥을 활용한 카페나 식당, 옥가게, 잡화점이 있는 나라마치는 우아스러운 교토와 다른 분위기가 있다. 나라마치에서 집집마다 처마에 빨간 인형을 달아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원숭이인데 악운이나 재앙이 집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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