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실견분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身相 見如來不. 不也 世尊. 不可以身相 得見如來 何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신상 견여래부. 불야 세존. 불가이신상 득견여래 하)

以故 如來所說身相 卽非身相 佛告. 須菩提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 非

(이고 여래소설신상 즉비신상 불고. 수보리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 비)

相 卽見如來 (상 즉견여래)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육신의 몸매로 여래를 볼 수 있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육신의 몸매로 여래를 볼 수 없사옵니다. 왜냐 하오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육신은 곧 육신이 아닌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무릇 있는바 모든 상은 다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닌 줄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우리들의 육신은 무량겁(無量劫)으로부터 시작된 망상, 아첨, 거짓. 잘난 체하고 뽐내는 분별망념들이 하나로 모여 이루어진 육신입니다. 이런 육신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분별망념을 여읜 육신이 아닌 때문에, 참 마음의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있음과 없음의 상, 좋아하고 싫어하는 상은, 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상이 상이 아닙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상을 여의면 있는 것도 아닌 진공이고, 진공이 묘유로 없는 것도 아닌 이 마음의 여래를 보는 것입니다.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세존이시여, 진정 어떤 중생이 이와 같은 말씀이나 글귀를 듣고 실다운 신심을 낼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는데, 과연 2500년 후에 이와 같은 말씀이나 글귀를 듣고 실다운 신심을 내는 중생이 있을까?

유전자 DNA와 제8아뢰야식은 시작도 끝도 없는 오랜시간 우리들의 모든 반복적인 행위, 습관이 쌓여진 업의 창고입니다. DNA와 제8 아뢰야식이 어째서 업장(業藏)인가? 그것은 길다 짧다, 있다 없다고 분별하기 때문에 업장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1초(秒)의 시간은 짧고 2,500년의 시간은 길다고 합니다. 그러나 1초가 쌓인 것이 2,500년으로, 1초의 시간이 없으면 2,500년이 없고, 2,500년이 없으면 1초의 시간도 없습니다. 그래서 1초는 2,500년으로 인하여 있으므로 있는 것이 아니고, 1초는 2,500년이 없음으로 인하여 없으므로 없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2,500년도 이와 같아서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다.

수보리 존자는 보살 10지 가운데 7지 보살로서 무색계의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에 머물고 있습니다. 비상비비상처정은 생각이 아니다 생각이 아닌 것도 아니다의 경계로, 길다 짧다, 있다 없다 하는 분별망념을 거의 여의었기 때문에 1초의 시간과 2,500년의 시간이 서로 다르지 않으며, 1초의 시간도 마음이고, 2,500년의 시간이 한마음이기 때문에 2,500년 후를 보는 것과 지금 이 순간을 보는 것이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것을 신통이라고 하는데, 분별망념이 다하고 분별망념이 다한 것도 없는 것이 6신통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분별망념을 여읜 부처님과 수보리 존자는 2,500년 뒤에, 그 누가 분별망념을 여읜 수행자인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지금 금강경을 듣거나 볼 때, 이 마음 그대로가 부처이며, 일체 중생이 부처라는 것을 굳게 믿는 신심(信心)을 내어 진실하게 여기고, 분별망념을 여읜 선근(善根)이 있는 사람입니다.

싫어하는 망념은 깨달음으로 인하여 있고 좋아하는 깨달음은 망념으로 인하여 있으므로, 망념과 깨달음은 있는 것이 아니고, 망념은 깨달음이 없음으로 인하여 없고 깨달음은 망념이 없음으로 인하여 없으므로, 망념과 깨달음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이와 같이 바로 보는 것이 뗏목으로 생사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법도 버려야 하거늘 그릇된 분별망념에는 더욱 머무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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