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조고손시지와 호잔지

호잔지의 본당. 뒤에 보이는 바위는 엔노교자, 구카이가 수행했다고 전하는 곳이다.

나라 사찰은 조고손시지(朝護孫子寺)와 호잔지(寶山寺) 소개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소개한 대부분 사찰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이번에 소개할 사찰은 간사이(關西) 지방에서는 유명하지만, 다른 지역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日이쿠마 지역민들 본찰 역할
조고손시지, 호랑이 인형 눈길
산악 수행의 명소였던 호잔지
재일교포 사찰 60곳 있었지만
세대를 거치며 20여 곳만 남아

수도권 출신인 나도 이 사찰은 이름조차 몰랐고, 간사이 지방에 살게 되어서 알게 된 곳이다. 일본에서 좋은 관광 정보는 전철역에 비치된 안내서가 도움이 된다. 나 역시 자주 이용하는데 이런 안내서에 자주 나오는 사찰이 조고손시지와 호잔지였다.

특히 새해를 맞이하여 사찰에 참배하고 1년의 행복을 기원하는 하쓰모데(初詣)에 많은 사람이 방문할 것 같아 궁금해서 나도 찾아가 보았더니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는 사찰이었다. 무엇보다 간사이 지방 민중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지역민이 자주 찾고 좋아하는 사찰을 통해서 간사이 지방의 역사나 문화를 더 깊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번에 소개하기로 했다. 조망이 아주 좋은 것도 한국 독자들에게 추천하고자 하는 이유다.

조고손시지(朝護孫子寺)
조고손시지를 소개하는 팜플렛이나 포스터에 꼭 나오는 사진이 거대한 호랑이 인형 사진이다. 보통 대개의 경우 호랑이 인형은 사찰에 없기 때문에 특이한 사찰이란 인상이 있었지만, 내가 범띠라서 그런지 이 사찰 역사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조고손시지는 오래된 역사가 있는 사찰이다. 6세기 후반에 쇼토쿠타이시(聖德太子)가 모노노베씨(物部氏)와 싸움에서 이기고자 발원하고 지금 조고손시지가 있는 산에서 기원했더니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이 나타나 쇼토쿠타이시에게 이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덕분에 승리한 쇼토쿠타이시는 여기를 ‘신(信)=믿을 만한’ ‘귀(貴)=귀한’ 산이라고 여기고 시기산(信貴山)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스스로 비사문천왕을 제작해 가람을 만들고 비사문천왕을 봉안했다. 비사문천왕이 나타난 날이 마침 인년(寅年), 인일(寅日), 인시(寅時)여서 호랑이를 비사문천왕의 사자(使者)라고 여긴 것이 조고손시지 호랑이의 유래이다. 지금 경내에 설치되어 있는 길이 약 6m인 큰 호랑이 인형이 조고손시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조고손시지라는 사찰 이름은 헤이안 시대 때 다이고(醍?) 천황에게서 하사 받은 것이다. 다이고 천황이 병에 걸렸을 때 시기산 비사문천왕의 가호를 입어 쾌차하자 이곳을 조정(朝廷) 안녕, 국토 수호, 자손(子孫) 장구(長久)를 기원하는 곳으로 정했다. 조고손시지라는 명칭이 이렇게 탄생했다.

경내 건물이 화재로 몇 번 소실되었고, 메이지시대에 들어서 폐불훼석(廢佛毁釋)으로 큰 타격을 받았지만 스님들의 중창 노력과 신자들의 지지와 후원으로 복원되었다. 20세기 중반에 본당(本堂)이 소실되었을 때도 신자들의 기부금이 1억6천만 엔이었다고 한다. 민중의 지지가 조고손시지의 중흥에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내에 탑두(塔頭, 본사에 속하는 사찰로 본사 경내에 있는 작은 절을 가리킴)가 3개 있는데, 탑두 3개 다 큰 숙방(宿坊, 참배객을 위한 숙박 시설)을 갖고 있고 신자뿐만 아니라 단체 관광객도 묵을 수 있다. 이런 것도 조고손시지가 민중의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조고손시지 상징인 큰 호랑이 인형. 뒤에 보이는 건물이 사찰의 본당이다.

호잔지(寶山寺)
오사카 난바역에서 도다이지나 고후쿠지가 있는 긴테쓰 나라역 방면에 전차를 타고 갈 때 터널을 통과하고 제일 먼저 도착하는 나라현에 있는 역(驛)이 이코마(生駒)역이다. 호잔지에 갈 때는 이코마역에서 내리고 바로 옆에 있는 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된다.

호잔지가 있는 이코마야마(生駒山)가 옛날부터 산악 수행을 하는 장소였다. 에도 시대의 승려 단카이(湛海)는 17세기 후반에 이코마야마에 올라가 수행하고 여기에 사찰을 만들었다. 이것이 호잔지의 시작이다. 호잔지 주요 불상이 본당에 안치되어 있는 부동명왕과 본당 옆에 있는 성천당(聖天堂)에 안치되어 있는 환희천(歡喜天)이다. 환희천은 원래 힌두교 악신(惡神)이었으나 십일면관음보살에 의하여 불교를 수호하는 선신(善神)이 되었다고 한다.

환희천은 기원하는 사람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주는 절대적인 위력을 갖고 있는 신으로 존숭을 받아 왔다. 특히 금전운이나 장사 번창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참배지로 번창했다.

특히 에도 시대에는 백성들의 사찰 순례가 유행했다는 배경도 있는데다가 ‘천하의 부엌(天下の台所)’ 오사카에서 가까운 호잔지에 오사카 사람이 많이 찾아간 것도 호잔지 번영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호잔지 참배 길 양쪽에 석주(石柱)가 줄지어 있고 석주에 기부한 사람의 이름과 금액이 새겨져 있는데 100만 엔, 200만 엔이 드물지 않고 2000만 엔, 5000만 엔, 심지어 1억 엔이라는 금액도 눈에 들어온다. 호잔지 신도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이 숫자가 보여준다.

이코마 지역과 재일교포
지난 회까지 소개한 나라 사찰들에 비해 조고손지와 호잔지는 민중의 힘이 더 큰 받침이 되어 있다.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는 이코마야마-시기산(이하 이코마)지역은 종교적으로 어떤 특징이 있을까.

일본에는 입산하여 엄격한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슈겐도(修驗道)라는 일본 특유의 신앙이 있다. 슈겐도는 산에는 신이 계시는 곳 혹은 산 자체가 신이라고 여겨 산을 존숭해 온 일본 고래의 산악신앙이 불교나 도교 등과 결합된 혼종 종교이다. 이코마는 산도 있거니와 계곡도 많고 수질도 좋아서 폭포 수행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아 옛날부터 슈겐도 성지였다.

슈겐도를 익히는 자를 슈겐자(修驗者) 또는 야마부시(山伏)라고 부르는데 슈겐도의 개조는 전설적인 인물인 엔노교자(役行者)이다. 호잔지는 옛날에 엔노교자, 진언종(眞言宗)의 개조인 구카이(空海, 일명 弘法大師)가 수행했다고 전하는 곳이고, 단카이 스님이 이코마에서 수행하고 사찰을 건립한 것도 이런 역사와 관계가 있다고 한다.

이코마는 또 재일교포가 만든 사찰이 많은 곳이다. 이에 대해 <聖地再訪(성지를 다시 방문함) 生駒の神(이코마의 신들)>이라는 책을 참고로 하면서 조금 더 소개하고자 한다. 책에 의하면 이런 사찰이 이코마에 60여 개 있다고 한다. 지금은 20개 정도로 줄었다.

이 사찰 대부분이 194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에 재일교포 1세에 의하여 건립된 것이고, 신자도 재일교포 1세인 여성이 많았다. 도시에 있는 재일교포가 만든 사찰과 달리 이코마 산 속에 있는 재일교포 사찰이 규모도 작고 지도에도 표시 안된 사찰이 많아서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이런 사찰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서 책에 있는 지도를 보면서 찾아갔다.

내가 답사한 코스는 이코마야마 서쪽 즉 오사카 쪽이다. 긴테쓰 이시키리(石切)역에서 주택가에 있는 가파른 비탈길을 계속 올라갔다. 여기는 길가에 작은 석불이 많아서 인상적이다. 주택이 점점 없어졌다. 지도에는 재일교포 사찰의 표시가 있는데 못 찾았다. “폐사(廢寺)가 된 사찰도 많아지고 있다고 하니까 없어진 건가”라고 생각하면서 올라가니 한국어 발음 로마자로 절 이름을 표시한 사찰을 하나 찾았다. 그런데 사찰이라기보다 오래된 집 같은 건물이었다. 사람이 없어서 지금도 운영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재일교포 사찰이 몇몇 있다고 하는 또 다른 길도 걸어봤다. 사찰 안내판이 있어서 재일교포 사찰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지만 건물이 낡은데다가 사람도 없어서 이미 폐사된 곳이었다. 책에 의하면 이전엔 많은 신자가 모였다고 한다. 재일교포도 세대가 바뀌면서 종교적인 사정도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이코마 산 속에 있는 좁은 길에서 폐사된 사찰도 몇 개 확인했고 여전히 운영하고 있는 작은 사찰도 보았다. 옛날처럼 많은 사람이 이렇게 좁은 길에 있는 소규모의 사찰을 찾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답사를 통해서 이코마가 옛날부터 종교적으로 중요한 곳이라는 사실과 호잔지처럼 민중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는 사찰이 이코마에 있는 이유도 알았다.

교통 및 답사 안내
조고손시지에 갈 때는 긴테쓰 시기산시타(信貴山下)역이나 긴테쓰 오지(王寺)역 또는 JR오지역에서 버스를 타고 간다.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번 정도 있다. 소요시간 20~30분. 또 긴테쓰 시기산구치(信貴山口)역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다카야스야마(高安山)역까지 가고 거기서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호잔지는 긴테쓰 이코마역에서 내리고 옆에 있는 도리이마에(鳥居前)역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호잔지역에서 내리고 호잔지까지 10분 정도 걸어간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케이블카를 타고 유원지가 있는 이코마야마 꼭대기까지 가는 것도 재미있다. 호잔지에서 정상까지는 가파른 비탈길을 걸어가면 40분 정도 걸린다.

꼭대기에서 이코마야마 서쪽에 있는 긴테쓰 이시키리역이나 누카타(額田)역, 히라오카(枚岡)역 방면으로 내려가는 답사 코스도 몇 개 있다. 이코마의 작은 사찰들도 이런 답사 코스에 들어가 있다.

조고손시지도 호잔지도 오사카에서 가깝고 조망도 아주 좋다. 꼭 한 번 가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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