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 제작의 고향 마투라

마투라 뮤지엄에 전시된 카트라 출토의 좌상. 전형적 우견편단식의 불상에서 당당한 붓다의 모습을 본다.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 혼자서, 혹은 여럿이서. 길을 간다. 사람이 가고, 자동차도 가고, 그리고 동물도 간다. 사람의 길에 동물들이 어슬렁거린다. 동물의 숫자도 많지만 종류 또한 많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어울려 어슬렁거린다. 아, 그렇다면 동물왕국인가. 마투라 가는 길. 이색풍경이다.

무불상 500년, 불탑 시대서
왜 불상을 만들기 시작했나
무불상서 불상 우위 변화는
불교조각사의 찬란한 궤적

불상 간다라·마투라 기원설 
보편성과 특수성의 경계선
민족양식 중요성 상기해야

그래도 소들이 사람의 길에서 어슬렁거리는 풍경은 낯익다. 최소한 인도에서는 그렇다. 특히 힌두교의 도시 바라나시 같은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거기선 소가 주인이다, 아니, 신이다.

그래서 신이 길 한복판에서 누워 쉬고 계시면, 자동차 운전사는 대책 없이 소처럼 쉬면서 기다리거나 멀리 돌아가야 한다. 우공(牛公)은 절대자이다. 갠지스 강가의 바라나시 풍경은 독특하다. 마투라 가는 길. 정말 이색 풍경이다. 덩치 큰 소 이외 말도 있다. 아니, 자동차 행렬과 돼지무리도 엉켜 있다. 사람 다니는 길에 돼지들이 엉켜있는 풍경. 어떤 때는 오리나 닭과 같은 가금류도 등장한다.

그뿐만 아니다. 원숭이 떼들이 건물과 건물 사이를 곡예 하듯 옮겨 다니고 있다. 원숭이는 사람을 의식하고 있다. 동물들 사이에서 사람들이 걷고 있다. 사람과 동물들이 섞여 있다. 마투라 불상을 보러 가는 길의 오묘한 풍광이다. 목적지 마투라 뮤지엄 가는 길의 풍경이다. 불상의 고향, 마투라.

무불상 시대 500년. 무엇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불상을 만들지 않았을까. 아니, 500년 이상 잘 참고 있다가 왜 불상을 만들기 시작했을까. 이 무슨 변화인가. 불탑 독점시대에서 탑상의 공존시대로, 그러다가 불상 우위의 시대로 이행되는 과정, 동양 불교조각사의 찬란한 궤적이다.

불상(佛像)을 영어로 번역할 때, ‘붓다 이미지(Buddha Image)’라 한다. 글자 그대로 깨달은 이의 모습이다. 불상. 불상 조성의 역사 2000년. 20세기에 이르러 불상 학자들이 나와 활발한 연구성과를 내고 있다.

불상 연구의 학문적 쟁점 가운데 하나는 불상 기원설이다. 어디에서 누가 처음으로 만들기 시작했는가. 크게 두 가지의 학설이 있다. 마투라와 간다라. 간다라설은 알렉산더의 인도 침공 이후 간다라 지역에서 불상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이 학설은 주로 서방세계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미술사적으로 간다라 불상의 우수성은 정평이 나있다. 간다라 불상은 그리스 로마의 헬레니즘과 불교철학의 만남이라는 특징을 내세운다.

외부 영향의 간다라 기원설에 맞서는 학설로 인도 자생의 마투라 기원설이 있다. 이는 인도 학자가 주장하고 있다. 인도 민족의 자생론과 외부 영향론, 이 양대 학설. 불상은 과연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만들기 시작했을까.

마투라 불상을 한자리에 모아 정수를 보여주고 있는 마투라 뮤지엄, 한적하면서 소박한 분위기이다. 뮤지엄은 석조작품으로 가득하다. 사암 성분의 돌로 이루어진 숱한 조각들. 마투라 조각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 조각은 주로 인체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사람 모습. 물론 사람 그 자체라기보다 신상(神像)이리라. 이방인의 눈길을 강하게 끄는 곳은 불상 코너보다, 불경스럽게(?), 힌두교 조각, 그 가운데도 약시 부분이다. 약시는 힌두교의 여신이다. 약시상은 진열작품의 숫자도 많고, 규모도 크고, 그리고 아름답다. 어쩌면 이렇듯 여체를 모델로 하여 아름답게 뽑아냈을까.

건강한 우아함과 높은 품격 그리고 탁월한 조형감각, 이 같은 찬사를 위한 찬사, 더 이상 감탄사가 필요할까. 관능미의 극치, 이런 표현이 적합할까. 세속적 표현으로 ‘쭉쭉 빵빵’, 하여 S자형의 굴곡진 볼륨과 박진감 있는 사실적 표현, 걸작의 행렬이다. 약시 조각은 나체이면서 여체의 성징을 유별나게 강조하고 있다. 약시는 풍만한 가슴과 가는 허리 그리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음부까지, 곡선미와 더불어 관능미까지 겸비하고 있다.

과연 신상이 맞는 것일까. 미스 월드 같은 미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마투라 지역 조각의 건강한 표현력과 상상력은 미술사를 풍요롭게 한다. 특히 힌두교 조각에서 그렇다. 이런 솜씨가 불상 조각으로 이어져 빼어난 걸작으로 이어졌다. 늘씬한 약시 부조가 불교의 스투파를 장식하고 있다. 마투라 뮤지엄에 진열된 약시 조각만 보아도 뭔가 느끼게 하는 요소가 많다.

“마투라 건축은 이슬람교 침입자들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어 이 시대의 건물은 한 예도 찾아볼 수 없다. 마투라의 스투파는 아마 그 이전 스투파들의 형태에 기초하여 발전하였을 것이다. 이들은 다른 스투파들과 마찬가지로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기둥들에는 보통 고부조로 약시상이 새겨져 있었다. 이 약시상들은 전시대의 어떤 상들보다도 현란하고 관능적인 형상으로 표현되었다. 이 미인들은 마치 창부처럼 거리낌 없이 도발적인 아름다움과 환락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약시상들은 바르후트나 산치에서 볼 수 있던 흐름이 절정에 이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충실한 형태같이 그럴 듯하게 제시되어 있으며, 또 몸과 팔다리는 능숙하게 결합되어 있어서 전과 같이 개별 부분들이 기계적으로 연결되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는다. 풍요의 여신상들은 보통 몸이 중심축에서 세 번 꺾인, 격렬한 콘트라포스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물결치듯 움직이는 자세와 꽃과 같은 우아한 손 모양은 인도 춤의 자세에서 따온 것이 명백하다. 이와 같이 관능적인 여인상들은 어떤 목적으로 불교 스투파에 조각되었던 것일까. 어쩌면 이 상들은 평화로운 불타의 세계 바깥쪽에 있는 세속계의 무상함을 신랄하게 표상하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 또는 성적 결합을 암시하고 있는 이 약시상들은 후대 힌두교 미술의 미투나상들처럼 영혼과 신적인 것의 결합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다. 2-3세기의 마투라 불상들은 간다라의 로마식 옷주름을 조아하게 모방하고 있지만, 그 밖에는 이렇다 할 서방의 영향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 벤자민 로울랜드, 〈인도미술사〉 中

명해설이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나는 벤자민 로울랜드의 해설을 생각하면서 마투라 뮤지엄을 거닐었다. 진열된 작품마다 각각의 개성적 발언을 들려주는 듯했다. 진열실에는 ‘카니슈카 입상’도 있다. 마투라 지역에서 출토된 석조작품이다.

불행하게 상체는 망실되었지만 하체부분만 가지고도 당당하면서 개성적 풍모를 느낄 수 있다. 오른손은 기다란 칼을 들고 있고, 외투에 명문이 새겨져 있다. ‘왕중왕 카니슈카 폐하.’ 카니슈카는 주화(鑄貨)에도 이미지가 남아 있는 바, 양자 흡사하다. 마투라 뮤지엄 소장 불상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으로 카트라 출토의 좌상(높이 69cm)을 들 수 있다. 거의 사각형에 가까운 광배를 두고 당당한 자세로 앉아 있는 붓다의 모습이다.
오른손은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있고, 왼손은 거의 직선으로 꺾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옷은 오른쪽 어깨를 노출시킨 전형적 우견편단식이다. 대인풍의 당당한 풍모에서 민족적 건강성을 느끼게 한다.

더불어 마투라 출토의 ‘불두(높이 57cm)’도 인상적인 작품이다. 머리 부분만 남아 있어 아쉽게 하지만, 단순미와 함께 불상 작가의 자신감을 자아낸 저력이 주목하게 한다. 원형에 가까운 두상, 거의 일(一)자 형식으로 길게 강조한 눈썹, 은행 알 같은 눈동자, 약간 부서지기는 했지만 작게 표현된 코, 그리고 작은 입술, 이런 이목구비에 비하여 머리의 괴체감이 주는 무게는 육중하다. 특히 단순 처리된 살상투와 헤어스타일, 전체적으로 단순미와 함께 둔중한 양감을 전해 주고 있다.

그리스 신상들은 이상적 형태로서의 인체미를 자랑했다. 신상이면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인체의 미를 추구했다. 8등신의 비례를 보이는 비너스의 경우가 이 점을 입증한다. 이상적 인체미, 이는 유럽 인물 표현의 교과서처럼 작동해 왔다.

반면 마투라 불상은 이상적 인체 표현 이전 깨달음의 존재라는 정신적 차원을 강조하려 했다. 즉 붓다의 이미지를 강조하고자 했다. 그래서 보통의 인물과 다른 신체상의 특징을 크게 32가지로, 세밀하게는 80가지로 특화시켰다. 32상(相) 80종호(種好)는 이래서 불상 도상학의 범본이 되었다.

사실 32상 80종호에 의거한 불상 조각은 어렵다. 너무 특이한 특징들이 많아 결과적으로 괴이한 모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기야 이런 부분은 신앙적 혹은 정신적 차원의 상징성으로 이해하게 한다. 어차피 인간의 모습과 차원을 달리하는 존재가 아닌가. 후대로 갈수록 불신(佛身)에 대한 신앙과 조형의식은 발전되었고, 보다 구체화되었다.

마투라 불상. 국제양식 계열의 간다라 불상에 비하여 민족적 양식이라고 분류되는 마투라 불상. 여기서 미술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생각하게 한다. 특정 지역에서 개성적으로 발전된 양식과 국제적으로 일반화된 현상의 보편성. 이것의 경계선 찾기는 쉬운 일 아니다. 문화와 예술은 상호간 주고받으면서 변화 발전한다.

경우에 따라, 특수성과 보편성은 상호 교차되기도 하고 교합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민족양식의 고귀한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민족 자생의 독자성은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부분이라고 판단된다. 나는 마투라를 걸으면서 민족양식의 소중한 가치에 대하여 생각했다.

길을 걷는다. 마투라의 길을 걷는다. 초기 불상을 배관하고 마투라의 어수선한 길을 걷는다. 아, 이런, 돼지들이 길을 막고 있구나. 나무 가지 위의 원숭이들은 나그네의 열린 가방 속을 노리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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