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 타임캡슐 ‘불복장’ 총망라

“서방의 교주 아미타불은 이 사바세계에서 중생을 고뇌에서 벗어나게 하는 인연이 있어 한편 피불(彼佛)이라고도 칭하니, 중생을 인도하여 구연대(서방정토) 위로 들어간다. 〈중략〉 널리 존귀한 사람과 미천한 사람들에게 고하여 그들의 도움으로 열반의 아름다운 뿌리를 심어서 다행스럽다.”

이 글은 조선 태종 후궁 의빈 권 씨가 단종복위운동을 도모했던 금성대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한 영주 흑석사 아미타불상의 권선문(1457) 중 일부다.

금성대군을 아들처럼 보살폈던 권 씨가 주도해 만든 아미타삼존상은 특이하게 협시보살인 대세지보살 대신 지장보살을 조성한다. 이는 모두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금성대군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조선 불상 300기 복장물 분석
불교사 연구 기초자료 의미 커

이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불상 내 안치되는 복장(服藏) 속 기록들이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 상을 점안하기 전 내부에 사리와 경전 등 넣는 복장에는 불상의 명칭, 조성 연대, 봉안 장소, 불상을 만든 장인, 조성에 참여한 사람과 신분, 조성 배경 등이 자세하게 쓰여진 기록물이 함께 안치된다.

복장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함부로 열 수 없어 이를 한국불교전통문화의 ‘타임캡슐’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불교미술사 연구에서는 빠질 수 없는 귀중한 자료이다.

유근자 동국대 미술학부 겸임교수(강원도 문화재전문위원)가 최근 발간한 〈조선시대 불상의 복장기록 연구〉는 불복장 연구와 자료의 집적(集積)을 이룬 의미 있는 연구서이다.

유 교수 연구의 가장 큰 의미는 조선시대 조성된 300기의 불상 복장기록을 분석하고 원문을 게재한 것이다.
이를 통해 유 교수는 조선시대 불사 동참자를 데이터베이스화했다. 이는 ‘숭유억불’의 조선에서 불상이 조성돼 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조선 전기에는 억불숭유 정책 아래에서도 왕실의 후원이 지속되지만 시대가 내려올수록 조선불교계는 차츰 자력으로 불사(佛事)를 진행하면서 수행자인 승려를 중심으로 서민화된 불사를 추진했다.

많은 백성들이 불상 조성에 나선 이유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고인의 극락왕생,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현세이익적인 무병장수와 종교적인 깨달음을 기원한다. 해남 대흥사 천불전의 천불상 조성에 관한 1817년의 기록을 보면 총 976명의 시주자들이 동참했는데, 스님과 일반신자로 구분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속가 부모님의 영가천도를 발원하고 있는 점이다. 이것은 효를 강조했던 당시 조선시대의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서에 대해 유 교수는 “조선시대 불상 조성기에 관한 종합적 연구는 아직까지 활발하지 못하지만, 불상 조성기 자료가 집성되고 분석이 이뤄진다면, 조선시대 불교조각사와 불교사 연구는 한층 체계적인 연구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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