⑬ 칠암자 가는 길

해발 1000m에 위치한 문수암 방문을 열고 바라본 지리산. 지리산 주능선이 한폭의 수묵화를 그려낸다. 상무주암과 문수암은 같으면서도 다른, 마치 정혜쌍수의 지혜를 전하는 듯하다.

 삼정산1,292m 능선 아래, 상무주암과 문수암 사이의 오솔길을 걸을 때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길은 저 강과 언덕 사이에 있다.’

그때 나는 되뇌였다. 어디 거기에만 길이 있는가. 하늘과 땅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이것과 저것 사이에도 길이 있지.

해발 1000m의 칠암자 순례길
고사목 숲길서 만나는 암자
보조국사 정혜쌍수 흔적 남아

그렇다. 모든 길은 사이에 있다. 암자와 암자 사이에도 길이 있어 사람들은 그곳을 칠암자 길이라고 부른다.
칠암자 길의 시작이나 끝이 되는 도솔암과 실상사는 각각 다른 행정구역에 있다. 칠암자를 품은 삼정산은 지리산의 한 줄기로, 경남 함양과 전북 남원 사이에 솟아오른 산이기 때문이다.

내가 들머리로 삼은 길은 도솔암이 있는 함양 마천면이었다. 도솔암에서 영원령을 넘어 영원사와 상무주암, 문수암, 삼불사, 약수암을 거쳐 실상사까지 이어지는 길을 나는 걷고자 했다. 실상사가 있는 남원 산내면을 들머리로 삼으면 그 역순으로 암자들을 찾아야 한다.

지도를 펴고 산행거리를 어림하니 15㎞였다. 일곱 암자를 다 들르자면 해종일 걸어도 모자랄 판이지만, 도시에서의 찌든 번뇌와 알게 모르게 생긴 병을 씻어낼 수만 있다면 이튿날까지라도 걷고 싶었다. 길을 가다 마음이 내키면 법당에 들어가서 삼배라도 올릴 요량이었다. 날이 저물면 칠암자 가운데 한 암자에 하룻밤 의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바람이 불면 바람 부는 방향으로, 꽃이 피면 꽃 피는 길을 따라서 그렇게 해찰하듯 걷고 싶은 이 길을 칠암자 순례길이라고도 부른다.

일곱 암자 모두가 볼거리를 지녔지만, 그중 사람들이 주목하는 건 상무주암과 문수암이다. 워낙 조망이 뛰어난 데다 암자를 돌보는 암주 스님의 내력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상무주암의 조망은 전남 순천 송광사의 보조국사비에 쓰인 비문이 보장할 만큼 빼어나다.

‘지눌이 옷 세 벌과 바리때 하나만으로 지리산 상무주암에 은거했는데, 경치가 그윽하니 천하제일인지라 선객이 거주할 만했다.’

지리산을 내려다보는 문수암의 일부 경관.

왜 아니 그럴까, 상무주암에 도착하니 지리산 주능선이 미닫이를 연다. 하봉, 중봉, 천왕봉, 촛대봉, 반야봉, 노고단에 이르는 수묵화에 정신이 팔려 상무주암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밀린다. 그러다 문득 뒤돌아서면 ‘상무주’란 현판과 마주친다. 여기서 누구나 한번쯤은 무슨 뜻인지 갸웃할 것이다. 무주(無住)가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그런 경지의 최상(上)위에 속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 머무름조차도 초월한다는 것일까? 이 의문을 암주 스님이 풀어줄 수 있으련만 기다란 막대기로 빗장이 걸린 출입문과 사진촬영금지라고 적은 빨간 푯말에 가로막힌다.

상무주암 현기 스님은 선방에서 용맹정진하던 수좌였다가 어느 날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린 인물이다. 그런 그가 이 상무주암에 은둔한 지도 20년이 넘었다. 그 사이 칠암자길이 생기고 상주무암은 불자가 아닌 등산객에게도 널리 알려져 이제 그는 더 이상 은둔자로 살 수 없게 됐다. 20년 넘게 상무주암에 상주(常住)했으므로 무주란 말도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해발 1,000m를 오르내리는 칠암자 순례길의 암자들은 세상과 멀어지려 일부러 거친 바위, 우거진 숲에 터전을 잡았으리라. 그러나 디지털 미디어의 비약적이고도 혁명적인 발달로 세상은 숨을 곳이 없어졌다. 지금 이 시각에도 칠암자 길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서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상무주암에서 문수암으로 가려면 깊은 숲으로 들어서야 한다. 고사목이나 바위를 덮은 검푸른 이끼, 고사리나 부처손 같은 오래된 양치식물들이 고생대 식물도감처럼 눈에 설다. 계곡을 타고 흐르는 시냇물 소리도 그때의 메아리처럼 멀고 아득하다. 그렇게 약간은 신비한 느낌에 빠져들기도 하며 숲길을 걷다가 문득 바위에 바짝 붙은 요사채를 만난다. 문수암이다.

문수암은 상무주암과 달리 여염집 분위기가 풍긴다. 암자 바깥에 내놓은 잡다한 살림살이부터가 그렇다. 법당 뒤편, 천인굴에 가지런히 놓인 맷돌이며 양은그릇, 플라스틱 바가지, 계곡물을 받아 담는 항아리까지 암자의 모든 것들이 속세의 물건들이다. 승복보다는 생활한복을 입은 스님이 거주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 암자 주인인 도봉스님은 외출 중이었다.

암자의 빈방에 들어가 관세음보살에게 삼배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바깥과는 달리 아늑했다. 나는 불쑥 자리에서 일어나 불단 옆에 놓인 기다란 좌복을 방바닥에 깔았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외진 절, 텅 빈 방에서 간절하게 절을 올리고 싶을 때가.

칠암자길에는 참선하기 좋은 자리가 있다.

오뉴월에 드린 108배에 땀이 비 오듯 했다. 대신 몸이 가벼워지고 눈이 맑아졌다. 방문 사이로 보이는 지리산 하늘이 차고 새파랬다. 부처의 손에 들린 연꽃을 보고 빙긋 웃은 마하가섭인 양 마음이 여여해졌다.
도봉 스님은 현기 스님과 사뭇 다른 성향으로, 일흔의 나이가 무색하도록 산 아래 동네를 자주 다녀온단다. 소문에 의하면 현기 스님과 사형, 사제하는 사이라고 한다. 두 스님이 경허와 만공의 덕숭문중 법맥을 이은 혜암 스님의 상좌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문수암은 혜암 스님이 상무주암에 주석하면서 지은 절이니 절조차도 사형 사제 사이인 셈이다. 두 암자와 두 스님이 다르면서도 같고,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야말로 사이의 본질은 아닐까.

칠암자에 처음 주석했던 보조국사 지눌은 고려불교가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으로 대립했던 시기, 그 둘을 정혜쌍수(定慧雙修)라는 타협의 사잇길로 인도한 스님이다. 그런 스님이기에 상무주암과 문수암에 내재된 은둔과 소통, 무주와 상주의 이분법을 풀어주고도 남을 선지식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상무주암과 문수암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이 두 암자와 나머지 암자의 특징을 이야기하고, 지리산 칠암자 가운데 영원사와 삼불사와 실상사가 왜 암자에 속하느냐고 따져 묻는다. 일곱이라는 숫자에 꿰맞추려다 생겨난 이름이 칠암자는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의문과 사실 사이에 길이 있다. 그러나 그 길은 누구나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안개 자욱한 길, 방황 혹은 방랑이야말로 우리가 길을 떠나는 유일한 이유이다.

실상사 가는길의 약수암서 상념에 잠긴 도반의 모습.

걷는길 : 도솔암 임도 - 도솔암 - 영원사 - 상무주암 - 문수암 - 삼불사 - 약사암 - 실상사
거리와 시간 : 14km 정도, 8시간 예상  (도솔암을 생략하면 10km 6시간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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