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과통과

범일 글 사진 / 불광 펴냄 / 1만 5천원

 

집착하지 않는 무소유의 삶을 추구하는 스님들의 세간은 늘 간소하고 깔끔하다. 그리고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생활 철학을 실천하느라 스님들은 몸을 바지런히 움직여 푸성귀쯤은 직접 길러 먹는다. 도심의 큰 절이라면 사정이 조금 다르겠지만, 산 속의 작은 절에 사는 스님이라면 다들 자급자족의 노하우 한두 개 정도는 갖고 있는 1인 생활의 달인들이다.

살기 좋은 양평의 산기슭에 자리한 넉넉한 절 서종사. 그곳에서 17년째 밥 짓고, 풀 뽑고, 길 고치고, 방 훔치는 담소(淡素)한 일상을 살아가는 범일 스님이 있다. 스님은 오래전부터 홈페이지 ‘조아질라고(http://joajilrago.org)’에 글과 사진을 올려왔다. 함께 일하고 공부하며 살아가는 벗들과의 정다운 교류, 개와 고양이, 꽃과 나무를 기르는 가지런한 마음, 몸을 움직여 절을 가꾸는 삶이 주는 만족감 등이 담소하게 표현된 스님의 글은 많은 이들에게 진실한 삶의 지혜를 전해준다.

 

살뜰한 일상이 왜 소중할까?

살아가면서 점점 지혜로워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 둘은 어쩌면 일상을 살피는 관심의 폭과 깊이의 작은 간격 때문에 그렇게 갈라진 건 아닐까. 공작선인장 꽃이 피었습니다. 선인장 몸집이 너무 커서 방에 두기 부담스러워하던 차였습니다. 그런 제 의중을 눈치챘는지 꽃이 말하길, “저 이렇게 예쁘거든요. 몸뚱이 조금 큰 거 가지고 뭐라 하지 마세요!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범일, 미안해하면서 “아, 예…()…()…()….”

범일 스님을 보면 일상의 작은 일 하나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비오는 날 풀을 뽑다가 가뭄 끝에 숨 좀 돌리는 줄 알았는데 사정없이 뽑히는 풀의 신세를 떠올리고, 코스모스 지는 꽃잎이 바람이 이끄는 대로 떨어지는 모습에서 인연 따라 순하게 흘러가는 자세를 숙고하고, 가만히 있는 거미를 보고 고요히 지내는 삶의 이로움을 깨우치는 식이다.

이런 성찰은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는다. 자기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어서는 이런 손님을 받아들일 수 없을 테니까. 마음을 비우고, 여관의 주인처럼 누구나 환대하는 이만이 지혜라는 방문객을 들여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불교에는 ‘곳곳에 만물이 모두 부처’라는 가르침이 전해 내려온다. 알고 보면 모든 것이 소중하며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뜻일 것이다. 그 가르침은 아마도 자기를 비우고 살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선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님에 대한 통념을 깨는 유쾌함

새로 출가한 행자님과 밤 8시부터 두 시간쯤 매일 절을 하는데 행자님도 뽕! 푹- 하는 것입니다. 으~ 독한 거. 추운 겨울이라 법당 문을 안팎으로 비닐과 뽁뽁이로 빈틈없이 막았는데…….

“행자님 나가서 배출하시오!”

“아직 남은 속세의 독이 빠지느라 더 독한가 봅니다.”

“ -_-; ”

이 장면 앞에는 스님이 방귀를 뀌는 장면이 나온다. 겨울에 법당 문을 닫고 절 수행을 하다가 스님이 방귀를 뿡~ 뀌니 함께 있던 사람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스님을 보았지만, 스님은 태연하게 “자연스레 나오는 것을 어쩌란 말입니까?” 하고 응수한다. 그런데 자신이 남의 방귀를 마시는 입장이 되고 보니 반성이 되더라는 이야기다.

〈통과통과: 예측불허 삶을 건너는 여유〉는 스님이 전작 〈조아질라고〉 이후 8년 동안 써온 1,500여 편에서 정선한 105편의 글과 46컷의 사진을 정갈하게 엮어 만든 짧은 에세이 모음이다. 웬만큼 힘든 일도 다 ‘조아질라고’ 일어난 것이니 맘에 두지 않고 ‘통과’시켜버리는 스님의 여유가 계곡물에 발을 담근 것 같은 시원함을 준다. 가만 돌아보니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다가와 있었다는 스님, 미래는 상상한 것보다 좋은 모습으로 차곡차곡 다가온다고 생각한다는 스님. 이 책에 실린 스님의 말씀들을 읽다가 잠깐 멈춰서, 천천히 순하게 사는 삶이란 무엇인지 가만 돌이켜보면 어떨까. 바로 그것이 어지럽고 답답한 삶을 꿰뚫는 청량한 지혜를 당신 것으로 삼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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