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한 마리가 방안에 들어왔다. 웬만하면 그놈의 침입을 눈감아 주려했지만 한 순간도 가만있지 못하고 날아다녀 정신을 쏙 빼놓는다. 급기야 녀석이 온몸으로 네 벽을 부딪치며 띵띵 굉음을 지른다. 견딜 수 없어 파리약을 안개비처럼 뿜어댔다. 딱 소리를 내며 녀석이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휴지를 들고 다가가니 무지갯빛 띠를 두른 쉬파리가 누런 알을 쏟아냈다. 아뿔싸! 그만 가슴이 밍밍해졌다.

인간·파리란 옷을 각각 입고
지구란 우주서 태어났을 뿐

태어난다는 것은 이렇게도 힘든 노릇일까? 암컷의 출산은 더욱 고통스럽다. 금파리의 수컷도 자식이 태어나도록 짝짓기를 하면서 암컷에게 잡아먹힌다. 만물은 단말마의 고통과 목숨까지 바쳐서 종족을 번성시킨다. 탄생은 죽음을 삼키고 일어서는 것일까? 살아가는 과정 또한 양육강식으로 전쟁과 다름없으리라. 삶은 고해(苦海)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새삼 가슴에 내려앉는다.

네모의 방안에서 태어난 누르스름한 파리 알들을 바라본다. 저 알들은 머지않아 파리로 부화하여 날아다닐 것이다. 파리와 나를 견주어 본다. 파리는 외형이 작아서 감히 인간과 겨룬다는 것은 우스운 노릇이다. 그런데도 나는 방금 전에 왜소한 파리 한 마리가 나의 행성에 침입해 설친다고 원폭을 쏟아 붓지 않았던가. 인간은 만물의 영장인지라 마음 내키면 언제든지 미물을 잡아 죽여도 상관없다는 듯이.

파리는 둥근 눈으로 덮인 머리를 치켜들고 인간의 생각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라는 듯이 앞 다리를 비벼댄다. 우리도 병균을 퍼뜨려서 인간을 병들게 할 수 있는 무기가 있다고. 그리고 자유롭게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렇다. 인간에게는 날개가 없기 망정이지 만약 있었다면 그 자만이 하늘을 찔렀으리라.

우리는 무아연기에 따라 인간과 파리라는 각각의 옷을 입고 지구라는 우주에서 태어난 것이 아닌가. 파리와 나의 근원은 하나인 것을. 파리는 곤충으로서의 삶을, 나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우주 전체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각각의 우주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동그라미이다. 모든 만물은 저 혼자만 살아갈 수 없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하물며 하늘에서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 가운데 하나인 지구에서 우리가 함께 태어난 것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 시절 인연인가.

방의 창문을 활짝 열어 파리가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도록 할 테다. 초신성처럼 산화했던 엄마 파리를 향한 미안한 마음을 어린 알들에게 갚아주고 싶다. 알들이 성충이 되어 푸른 창공을 힘차게 날아다닐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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