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카쿠지·난젠지

긴카쿠지 경내 전망대서 바라본 사찰의 모습. 히가시야마 문화의 정점을 느낄 수 있다.

긴카쿠지(銀閣寺)
은각사. 일본어 발음을 한글로 표기하면 긴카쿠지(銀閣寺). 긴카쿠지라고 하면 지난번에 소개한 킨카쿠지가 짝으로 떠오른다. 그렇다고 이 두 사찰이 동시대에 지어진 것은 아니다. 킨카쿠지는 15세기 전반 무로마치 막부 3대 장군에 의하여, 긴카쿠지는 15세기 후반 8대 장군에 의하여 지어진 것이다. 또 킨카쿠지는 사찰 전각에 금박이 입혀져 있어 금빛이 나지만, 긴카쿠지 전각에는 은박이 입혀 있지 않다.

교토 벚꽃길 유명한 ‘철학의 길’
북쪽엔 ‘銀閣寺’, 남쪽엔 ‘南禪寺’
은각사 히가시야마 문화의 정점
名園많은 남선사 일대 정원 같아

긴카쿠지는 지난 3월 ‘꽃 길, 꽃 사찰’ 특집 때 소개한 적이 있던 교토 동쪽 벚꽃으로 유명한 ‘데쓰가쿠노 미치(哲學の道)’ 북쪽 기점 가까이에 있다. 임제종 쇼코쿠지(相國寺)파에 속하는 선종 사찰이고, 정식 명칭이 긴카쿠지가 아니라 도잔 지쇼지(東山慈照寺)라고 한다. ‘지쇼’는 8대 장군인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 1436-90)의 법호에서 유래되었다. 1482년에 요시마사가 자신의 은거처로 건립을 시작한 별장인 히가시야마전(東山殿)이 긴카쿠지의 시작이다.

3대 장군 아시카가 요시미쓰의 손자인 요시마사는 단 8세라는 어린 나이로 8대 장군이 되었다. 막부의 전성기를 이룬 요시미쓰 시절과 달리 이때는 쓰치잇키(土一揆)라는 농민의 민란이 자주 일어나 막부의 권세가 많이 약해졌다. 가뭄과 역병 등으로 죽은 사람도 많아 사회가 혼란스러웠다. 요시마사는 장군 자리를 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후계자였다. 후계자 문제를 계기로 막부의 관계자들 사이에 갈등이 생겨 큰 전란이 일어났다.

그것이 바로 교토를 불바다로 바꾼 1467년 오닌의 난(應仁の亂)이다. 요시마사는 1473년에서야 장군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었고, 1477년 마침내 오닌의 난이 종결되자 젊었을 때부터 갖고 싶었던 별장 짓기를 시작했다. 그것이 위에서 말한 히가시야마전이다. 요시마사가 1490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유언이 무소국사(夢窓國師)를 권청 개산으로 한 선종 사찰, 바로 오늘날의 도잔 지쇼지·긴카쿠지가 되었다.

요시마사는 정치적으로도 성과가 없었고 정치가로서의 평가도 좋지 않았지만, 문화인으로서는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별장에서 중국 회화, 도자기, 칠기 등으로 실내를 꾸며 자노유(茶の湯, 일본의 茶道)나 렌가(連歌, 일본의 전통적인 시 형식의 하나)를 즐겼다. 예술적인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찾아내는 눈도 높았다. 요시마사는 신분에 관계없이 실력이 있는 사람을 중용하였으며 그런 사람들을 정원 조영, 장벽화 그리기 등에 임용했다.

요시마사 시대에 꽃피운 문화를 히가시야마 문화라고 부른다. 자노유, 렌가, 화도(꽃꽂이), 노오(能, 전통 가무극), 정원 등 다양한 예술이 발달한 히가시야마 문화는 일본 전통 문화의 뿌리가 되어서 오늘날의 생활 문화까지 잇닿아 있다. 헤이안 시대의 궁중 문화, 요시미쓰 시대의 기타야마 문화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간소하면서도 세련되고 기품이 있는 히가시야마 문화에는 일본 문화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와비’, ‘사비’가 가득하다.

현존하는 창건 당시의 건물이 긴카쿠와 도구도(東求堂)이고 이는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요시마사가 완성된 모습을 보지 못한 긴카쿠는 원래 관음전(觀音殿)이라고 불렸다. 이끼로 유명한 사이호지(西芳寺)의 유리전(瑠璃殿)과 요시미쓰의 킨카쿠를 모델로 지어졌다고 전하는 긴카쿠는 2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초층에는 작은 지장보살좌상, 그 주위에 더 작은 천체지장보살입상이 안치되어 있고, 선종 불전 양식인 2층에는 관세음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그런데 긴카쿠라고 하면 원래 은박이 입혀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해서 논의가 있었다.

2007년에 실시된 엑스선 조사 결과, 은박이 입혀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은박을 입힐 계획이었다가 요시마사 죽음으로 실현되지 않았다라는 주장도 있지만, 원래 긴카쿠라는 명칭은 에도 시대의 자료에서 나온 것이지 창건 당시의 이름이 아니다.

아마도 긴카쿠는 에도 시대에 킨카쿠에 대비해 만들어진 명칭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외국 사람이 은빛나는 건물을 기대하고 가봤더니 은박이 없어서 실망했다고 했지만 히가시야마 문화의 특징으로 보면 은박을 입힐 계획이 아예 없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은박이 없어도 긴카쿠는 반짝반짝 빛을 내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닌젠지의 삼문.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난젠지(南禪寺)
난젠지(南禪寺)는 철학의 길 남쪽 기점에서 더 남쪽에 위치한다. 철학의 길 주변에 있는 사찰 중에서도 긴카쿠지, 난젠지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난젠지 창건은 긴카쿠지보다 200년 전인 13세기 가마쿠라 시대이다. 지금 난젠지 자리에는 원래 가메야마(龜山) 천황(1249~1305)이 지은 이궁이 있었다. 이궁에서는 밤마다 나타나는 요괴에 시달렸다. 그 때 법황(法皇, 출가한 태상황)이 되었던 가메야마가 고승에게 부탁해서 요괴를 없애려고 기도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도후쿠지(東福寺)의 스님에게 기도를 부탁했더니 효과가 있었다. 그 후 가메야마 법황이 선사에게 깊이 귀의하여 1291년 이궁을 선종 사찰로 바꾸었다. 처음엔 사찰 이름이 젠린젠지(禪林禪寺)였다가 중국에서 일본에 전한 선종이 남종선(南宗禪)이어서 난젠지(南禪寺)로 바뀌었다.

도후쿠지, 덴류지를 소개했을 때 언급한 교토 5산은 교토에 있는 임제종 5대 사찰이다. 14세기 후반에 3대 장군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사찰 등급을 매길 때 난젠지를 오산지상(五山之上)이라는 5대 사찰보다 더 지위 높은 별격의 지위로 선정했다. 난젠지는 높은 사격에 어울리는 걸출한 선승들을 역대 주지로 모시고 그 사세를 자랑했다. 안타깝게도 3번에 걸친 대화재로 가람이 전소되어 창건 당시의 전각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현존하는 건물은 에도 시대 초기 이후에 재건된 것이다. 그래도 국보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이나 장벽화 등이 볼만하다.

난젠지에서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주로 삼문(三門), 방장(方丈), 난젠인(南禪院)이다. 천장에 운룡도가 그려져 있는 법당은 못 들어가고 밖에서 안을 구경한다. 지온인(知恩院), 닌나지(仁和寺)와 함께 ‘교토 3대문’으로 꼽히는 난젠지 삼문은 높이 약 22미터, 2층 누각으로 훌륭한 문이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난젠지 삼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아들인 히데요리(秀?)를 중심으로 한 도요토미가(豊臣家)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1628년에 건립된 것이다. 일반 방문객은 2층에 올라갈 수 있다.

2층 내부에는 보관석가여래상을 중심으로 16나한상 등이 안치되어 있고 천장과 벽에 화려한 봉황, 비천상이 그려져 있다.  2층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밖에서 내부를 구경할 수 있다. 2층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아주 좋다.

난젠지 방장은 1611년에 고쇼(御所)의 건물을 하사받았다고 전하는 대방장(大方丈)과 후시미성(伏見城)의 건물을 옮겼다고 전하는 소방장(小方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방장 하이라이트는 가노파(狩野派) 일문에 의하여 그려진 장려한 장벽화다. 가노파란 요시마사를 모신 가노 마사노부(狩野正信)를 시조로 하는 무가(武家)를 모셔 번영한 화가 일문이다.

특히 유명한 것은 소방장에 있는 군호도(群虎圖)다. 일본에는 호랑이가 없기 때문에 아마도 수입한 호피를 참고로 해서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줄무늬가 아니라 반점이 있는 표범을 닮은 것도 그려져 있어 해설원에게 물어보았더니 암컷 호랑이라고 한다. 또 방장에 있는 정원은 품격이 있는 가레산스이 정원으로 알려져 있다.

방장 남쪽에 있는 난젠인에는 창건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정원이 있다. 오닌의 난 이후 오랫동안 황폐되었으나 에도 시대에 재건되었다. 난젠지 주변에 있는 탑두 사원도 명원(名園)이 많아 난젠지 일대 전체가 정원이라는 느낌이 든다.

긴카쿠지 난젠지 답사 안내
   긴카쿠지와 난젠지 쪽에 대중교통으로 갈 때는 버스를 타고 간다. 난젠지는 지하철 동서선(東西線) 게아게(蹴上)역에서도 가까워 나는 게아게역을 자주 이용한다.

난젠지에서 가람과 난젠인 사이에 있는 수로각(水路閣)도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수로각은 메이지 시대에 만들어진 수도교(水道橋)인데 비와호(琵琶湖) 물을 교토로 끌어들이는 비와호 소수(琵琶湖疎水)의 수로가 벽돌 아치 위에 흘러 지나가고 있다. 위에 올라가면 빠르게 흐르는 물길을 바라볼 수 있다. 아치 주변에는 아름드리나무가 있다. 특히 단풍과 아치의 경치가 아름다워서 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으러 가을이면 찾는 곳 가운데 하나다.

난젠지 경내를 나와 북쪽으로 걸어가면 오른쪽에 에이칸도(永觀堂)라는 단풍으로 유명한 사찰이 있다. 난젠지, 긴카쿠지 일대는 에이칸도,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 호넨인(法然院) 등 볼거리가 많다.

긴카쿠와 함께 창건 당시의 건물로 알려진 도구도(東求堂)는 매년 봄과 가을만 공개된다. 올해는 11월 30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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