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진흥원 화요열린강좌… 주제: 채식이 세계인의 밥상을 치유하다
 

채식 여부는 이제 선택이다. 먹을 게 없어 산나물 뜯어먹던 예전과 달리 풍요로운 먹거리의 홍수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인류는 이전에 없던 질병을 앓고 지구는 오염에 끙끙댄다. 건강함을 되찾을 방법은 무엇일까. 채식이다. 채식이 바로 지구의 미래 대안이다.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10월 17일 대한불교진흥원 화요열린강좌서 ‘채식이 세계인의 밥상을 치유하다’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정 교수는 “인류의 오랜 역사는 채소와 함께 해 왔으며, 건강한 미래를 위해서는 채식이 생활화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진형 기자
정혜경 교수는… 이화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농림수산식품부의 식품산업진흥 심의위원과 농수산물유통공사의 한식 세계화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서울의 음식 문화〉 〈한국 음식 오디세이〉 〈천년 한식 견문록〉 등이 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
채소는 인간을 가장 이롭게 한다
우리는 건국때부터 채소와 함께
채식의 민족답게 채식 유지해야


인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입니다. 음식에 문화도 담겨있고 사상도 담겨있습니다. 민족이 수천 년동안 먹어온 것에 문화가 다 들어 있습니다. 음식은 먹고 나면 DNA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음식이라는 것은 민족성을 규정하는 요소입니다. 음식이야말로 인간의 중심에 있지요.

먼저 채소, 나물 등 많이 쓰는 용어라 익숙하긴 하겠지만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채소는 한자어입니다. 푸성귀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죠? 남새라는 말 알고 계신가요? 예전에는 채소를 푸성귀, 남새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지금도 남새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나물은 무엇일까요. 나물이라고 하면 채소나 반찬 같은데 그걸 다 포함하는 용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또 채소대신 많이 쓰이는 말 있죠, 야채. 야채는 일본어로, 채소는 우리말로 알고 계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문헌에는 야채라는 말도, 채소라는 말도, 수채라는 말도 나옵니다. 야채도 일본식 용어만은 아닙니다. 우리말인줄 알았던 채소가 한자어인 것처럼요.

문헌 속 채소 이야기
먼저 대중매체 속 채소를 찾아 소개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많이 아는 소설이나 만화, 드라마에서 흔히 나왔습니다. 소설 〈혼불〉 〈토지〉 〈미망〉 만화 〈식객〉 드라마 〈대장금〉 등 우리가 본 작품들 속에 채식이 있습니다. 채식은 옛날 우리 조상님들의 글 속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미 고려시대 때, 이규보 선생님께서 ‘가포육영(家圃六詠)’을 남기셨습니다. 가포육영은 오이, 가지, 순무, 파, 아욱, 호박의 여섯 가지 채소재배에 대한 기록을 시로 남긴 것입니다. 당대 식습관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장아찌 얘기를 보면 당시 가을에 동치미를 담가 먹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깃국에 파가 들어가니 맛이 더해진다고도 하셨고 여러 채소 사용법을 계속 소개합니다. 시를 통해 옛날 우리 조상들이 채소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목은 이색 선생님도 채소얘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중 가장 좋아하셨던 것이 두부입니다. 두부는 콩으로 만든 가장 좋은 단백질원이죠. 두부가 고기의 비계 같다며 굉장히 많은 두부 예찬을 남기셨습니다.

또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 선생님도 있습니다. 실제로 조선시대 미식가를 넘어서 탐식가셨다고 합니다. 허균 선생님은 〈도문대작〉이라는 이야기도 남기셨습니다. 도문대작(屠門大嚼), 도살장 문을 바라보고 입맛을 다신다는 뜻입니다.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셨죠. 그런데 이분의 〈도문대작〉에도 채소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방풍죽입니다. 방풍이라는 채소로 쑤어 먹는 죽입니다. 당시 먹을 게 없어서 먹은 것이겠습니다만 우리 조상들은 그 향을 느끼며 즐기며 먹었습니다.

두 분만 더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정약용 선생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 다산이라는 호에서 다(茶)가 차를 의미하죠. 〈한암자숙도〉에 보면 채소를 예찬하고, 채소로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추사 김정희 선생님입니다. 당대 최고의 화가이자 서예가셨습니다. 허균 선생님이 탐식가였다면 그 다음 미식가로 손꼽히는 분이 김정희 선생님입니다. 귀양 가셔서도 어느 집 된장이 맛있으니 사 보내라고 하실 정도였습니다. 나이 드시고는 ‘세모승(細毛僧)’이라는 시를 통해 우뭇가사리를 예찬하기도 하셨습니다.


채소의 역사와 우리의 역사
채소의 역사를 간단하게 볼까 합니다. ‘선사인’이라고 하면 괜히 낯설 수 있지만, 그냥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선사인들이 먹었던 채소는 도토리입니다. 전분을 내 먹기도, 그냥 먹기도 했습니다. 그 도토리가 요새 스페인서 건강식으로 부상 중이죠. 도토리는 굉장한 건강식품입니다. 선사인들은 도토리와 밤, 마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단군신화에는 쑥과 마늘이 나오죠. 그 옛날에도 쑥과 마늘을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늘로 해석된 것이, 원본 문헌에는 대산이라고 돼있는데, 명이나물이나 달래라고 지금은 보고 있습니다. 당나라 이후에 지금의 마늘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쑥은 항산화 물질을 많이 함유한 아주 좋은 음식입니다. 서양에서도 쑥을 술에 넣어 먹습니다.

삼국시대로 넘어가면 굉장히 다양해집니다. 우리가 먹는 무, 상추, 가지, 마늘, 아욱 등이 나옵니다. 또 식생활의 계층이 없었던 이전과 다르게 귀족식과 서민식으로 나뉘게 됩니다. 삼국시대 이후부터 우리의 식사 패턴이 자리 잡힙니다. 이 시대 이후 권력을 가진 사람이 생기고, 쌀밥을 먹게 되고, 다양한 채소가 경작됩니다.

그 다음은 고려시대입니다. 고려시대로 오면 음식이 다채로워집니다. 불교가 국교가 되면서 육식과 살생을 금하고 소식을 하면서 한국 음식의 채식전통이 이때부터 기틀을 잡았습니다.  실제로 고려 후기 〈향약구급방〉에는 다채로운 채소가 나옵니다. 불교가 우리나라 채식 문화를 잡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팔도지리지 〈동국여지승람〉서 각 지역의 토산물로 다양한 채소가 재배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왕실에서는 얼마나 특별한 채소를 먹었을까요? 정조 19년에 〈원행을묘정리의궤〉 들어보셨죠? 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의궤입니다. 의복의 자료가 되기도 하지만 음식연구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여기에 나오는 채소만 15가지 이상입니다. 또 임금이 윤선도 집에 내려준 음식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채소가 귀한 것이었다고 나옵니다. 당시 조선시대 채소는 굉장히 귀한 구황식이었습니다. 대부분 약재들이었습니다. 먹을 게 없어서 나라에서 먹으라고 했던 야생의 산나물과 채소. 이것들은 우리 민족이 살아있게 한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말에 가면 다양화됩니다.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채소 중 50%는 외래종입니다. 파, 토마토, 홍시 등이 이때 들어옵니다. 우리는 고추의 민족으로 매운맛을 즐긴다고 하는데 고추도 조선 후기 남미에서 들어왔습니다. 현재는 남미보다 더 다양하게 고추를 사용하죠.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도 다양한 채소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쌀을 탈취해갔기 때문입니다. 개항기 이후에는 케일, 케비지, 레드케비지, 양파, 파슬리, 아스파라거스 등이 들어옵니다. 이렇게 5000년 역사가 끝납니다.


채식과 건강
건강 얘기 안 할 수 없죠. 채식위주의 한식은 건강을 유지케 해주고 만성질환 예방효과가 있습니다. 채소가 중요하다고 할 때 ‘기근’이라는 말을 많이 언급합니다. 먹을 게 없을 때 기근이라고 하지요. 예부터 곡물뿐 아니라 채소가 부족해도 기근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채소가 우리의 중요한 식품이었습니다. 평균적으로는 하루의 식사를 채식과 육식 8:2의 비율로 먹는 것이 좋습니다.

최근 미국에서 채소의 생리활성물질 파이토뉴트리안트에대한 연구가 한창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채소를 안 먹어서 항산화력도 떨어지고, 섬유질이 부족해 비만이 오기 쉽습니다. 미국서 굉장히 많은 전문가가 모여 국민들에게 “접시의 반을 반드시 채소로 채우라”고 말했습니다. 어마한 돈을 들여 한 연구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먹던 방식으로 먹으면 됩니다. 씀바귀, 쑥 등에 미국서 찾는 모든 물질이 들어있습니다.

한때 와인이 몸에 좋다고 붐이었습니다. 포도껍질 성분이 심장에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머루는 더 좋습니다. 머루와 더불어 부추, 율무 등이 암 예방학회에서 선정한 음식입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채소 소비 1등입니다. 실제로 우리 민족은 나물을 다양하게 먹었습니다. 국내 총 자생식물은 4500여종이고 식용은 1000여종이나 됩니다. 옛날에는 99가지 나물 노래를 알면 3년 가뭄을 넘긴다고 했습니다.

〈동의보감〉에도 55종의 채소가 나오고, 상당히 유용하다고 쓰여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외국에서 온 음식법이나 식이요법을 보는데 우리는 조선시대 때부터 식이요법서를 편찬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식료찬요〉가 그것입니다. 이 중에는 열 몇 가지의 채소와 효능이 다수 수록됐습니다.


미래의 대안, 채식
지구의 미래 대안 음식은 바로 채식입니다. 한국인의 채소 섭취는 모든 연령대가 하루 권장량인 400g에 미달합니다. 특히 아동ㆍ청소년기 및 청년기 섭취량이 저조합니다. 채소ㆍ과일의 섭취량이 영양섭취기준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은 현대인의 식생활의 불균형을 의미합니다. 보건복지부 2012 국민영양조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1969년 우리 식탁의 식물성 식품과 동물성 식품의 섭취 비율은 97:3이었습니다. 이때가 가장 좋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60년대처럼 육식과 채식의 비율을 맞춰야 합니다. 채식이 미래에 대안인 이유는 단순히 우리 몸건강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고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에너지 소비, 환경오염 등 부수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결론적으로 채식은 환경도 지킬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미래는 어떠한 먹거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사람들에게 음식을 공급하는 일은 인간의 삶과 지구에 큰 영향을 미치죠. 기후변화, 에너지문제, 도시화, 자본주의, 기아문제 등 모든 문제의 핵심은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미래는 우리가 지금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달라지기에 지속가능한 먹거리로 옮겨야 합니다. 지속가능한 먹거리는 안전을 넘어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둡니다. 그리고 그러한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 먹거리 노동에 있어서 공정한 노동관계, 자연과의 지속가능한 관계 등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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