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교단 안팎으로 매우 위중한 시기다.” 새로 총무원장에 선출된 설정 스님이 당선 소감에서 한 말이다. ‘매우 위중한 시기’라는 말에 모든 불자들이 공감할 것이다. 아니 그러한 말 정도로는 우리 불교 종단의 위기를 다 말할 수 없다고 외치는 불자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위기감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승단의 문제라는 것도 틀림없다.

도대체가 왜 총무원장 선거를 한번 치를 적마다 모든 불자들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인가? 어찌하여 속인들의 선거보다도 더 잡음이 많고, 청정성을 의심케 하는 일들이 무더기로 쏟아지는가?

 

성태용 / 前건국대 철학과 교수

교단 안팎으로 위중한 시기라는
설정 스님 당선 소감 매우 공감

무사히 끝난 선거에 잡음 ‘無用’
하지만 적당히 넘어가서도 안돼
‘가라앉는 배’ 되지 않기 위해서
새 집행부 뼈 깎는 아픔 감내해야

멈추는 순간 쓰러진다는 각오를
신임 총무원장 스님께 충언합니다


무사히 잘 끝난 선거를 두고 괜스레 잡음을 만든다고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적당히 넘어가고 넘어가면 나중엔 어찌 될 것인가? 한국불교는 가라앉는 배가 될 것이요, 총무원장 선거는 가라앉는 배의 선장을 다투는 일이 될 것이다. 아니 그 가라앉는 배를 더더욱 빠르게 가라앉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할 것이다.

너무 모진 표현 아니냐는 비난을 각오하고 ‘가라앉는 배’라는 표현을 쓴 필자의 충정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고, 아예 한 걸음 더 나아가 볼까 한다. 객관적인 사실로 보면 이미 한국불교는 가라앉는 배라 할 수 있다.

무엇이 객관적인가? 우선 스님의 수가 그러하다. 그리고 신도의 수가 또한 그러하다. 조계종 스님의 수가 1만 3천 명이 되지 않는다. 다른 종단 다 합쳐도 그리 늘지 않을 것 같다.

불교가 탄압받던 시절, 인구수는 1,000만 명 정도로 잡아도 많을 것 같은 조선왕조 성조 때 5만의 도첩이 발행되었다 한다. 아무리 다종교 시대라 하더라도, 2대 종교에 들어가는 불교의 승려 수를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적지 않은가? 거기에 지금 출가자의 추세를 보면 해마다 더 적어지고 있다. 이것만 보아도 가라앉는 배가 아닌가?

신도 수는 또 어떤가? 젊은 불자들의 수는 정말 타 종교와 비교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적고, 전체 불자의 수도 급격한 감소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통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승려 수와 신도 수가 이렇다면 가라앉는 배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데 그 가라앉는 배의 선장을 뽑는 일이 그 배를 더더욱 가라앉히는 모습을 보인다면 정말 답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의 총무원장 후보들이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설정 스님이 당선소감에도 밝혔듯이 모두 한국불교와 조계종단의 위기에 대한 투철한 인식을 바탕으로,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사명감에 충만하실 것으로 믿는다. 그렇지만 현 상황이 너무나 심각하기에 천만 불자들은 그 충만한 사명감이 더더욱 충만한 모습으로 구현되기를 바란다.

우선은 총무원장 선거로 더더욱 위태롭게 드러난 청정승단의 모습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가라앉는 배’라는 표현이 나오게 만드는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적당주의가 통할 때는 이미 지났다. “설마 그럴까”하는 의구심으로 넘어가는 불자들의 의심도 그냥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넘어갈 수준은 이미 지났다. 아프더라도 사실을 사실로 밝히고, 뼈를 깎는 아픔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골수에 든 병을 치료할 길이 없다.

설정 스님의 당선 소감에는 “달리는 말은 발굽을 멈추지 않는다”는 말씀도 있었다. 그 말씀에 정말 모진 말을 덧붙여야 할 것 같다. “멈추는 순간 쓰러진다는 각오로 임해 주십시오”라고. 우리 불교 종단의 현황이 잠시라도 노를 멈추면 더더욱 가라앉는 배와 같다고 보는 것이 필자만의 쓸데없는 걱정이 되도록, 필자의 구업을 좋은 결과로 회향해주시기를 바라며 드리는 말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