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마나 작가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에 몸이 움츠러드는데 TV 화면에서는 젊은이들이 깊은 바닷물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내린다. 꽃송이들이 터지듯 하얀 포말을 흩뿌리며 물속으로 낙하하는 그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비단 바다가 아니더라도 물만 있으면 사람들은 물속으로 뛰어든다. 왜 인간은 물속으로 뛰어드려는 본능이 잠재하는 것일까?

지상 최초의 다이버는 ‘부테스’였을 것이다. 그는 이아손과 함께 황금 양털을 찾는 아르고호의 모험에 참가했는데,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홀려 아르고호의 선원 가운데 유일하게 바다로 뛰어들었다. 물거품 속에서 태어난 아프로디테가 그를 물속에서 끄집어내어 대기 중으로 데려가는 동안에 에릭스를 수태했다.

세이렌의 노랫소리가 얼마나 매혹적이었으면 부테스는 노를 젓던 손을 멈추고 홀로 갑판으로 올라가 바다로 뛰어내렸을까?

나는 사람들의 넋을 빼앗아 갔던 세이렌의 노랫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래서 이태리 남쪽에 있는 카프리 섬의 마리나 피콜라 해변의 협소한 틈새에 있는 ‘세이렌들의 바위’로 배를 타고 나아갔다. 지중해의 파란 파도가 암초 사이의 바위 동굴 속으로 포효하듯 밀려들었다. 얼마 후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동굴은 하얀 포말을 뱉어냈다. 쏟아져 나온 물거품은 ‘세이렌들의 바위’를 따라 하늘로 솟아올랐다. 흡사 새들이 비상하듯.

오디세이아가 몸을 돛대에 밧줄로 꽁꽁 매어두고 세이렌의 음악을 즐겼듯이, 나도 몸을 의자에 붙들어 매지 않았다면 작은 배가 암초와 ‘세이렌들의 바위’ 사이에서 소용돌이치느라 몸이 바다 속으로 튕겨 나갔을 것이다.

밀랍을 바르지 않은 나의 두 귀에는 삐죽삐죽한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소리가 들렸다. 새소리를 들었는지도 모른다. 해안에서 떨어져 파도가 잔잔한 바다 위의 요트에서는 벌거벗은 젊은이들이 부테스처럼 바다 속으로 풍덩풍덩 뛰어내렸다.

부테스는 새들이 내는 여인의 노랫소리에 끌려서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을 것이다. 그리스어로 새를 세이렌이라 부른다. 여자의 젖가슴을 지닌 새의 목소리가 부테스를 불렀다. 근원의 모태(母胎)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남성이 겪는 변성기가 없는 여성의 맑고 깨끗한 노랫소리이다.

조르쥬 바타유는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마네>에서 라스코 동굴에 그려진 벽화 가운데에서 세 개의 장대 위에 새가 앉아있는데 이것은 샤먼들이 ‘새 코스튬’을 걸친 것의 원형으로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의 본성, 즉 본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세이렌은 부테스에게 우리가 있는 이곳으로 오라고 노래했다. 부테스는 예전에 어머니의 양수 속에 있었다. 그곳에서는 오직 어머니의 음성만이 들려왔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기원의 내부에서 울리는 노랫소리이다.

부테스만이 아르고호에 타고 있던 50명의 선원들 가운데서 어머니의 노랫소리를 알아들었다. 그래서 그는 망설임도 없이 존재의 근원을 향하여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내던졌다. 인간이 부테스처럼 물로 뛰어드려는 욕망은 우리 안에 근원으로 회귀하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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