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티베트 전통의식 겔룩파 ‘묀람첸모’

대기원 법회의 끝을 장식하는 미륵불 행차. 대탑의 동서남북으로 관욕과 길상을 청하는 기도를 올리고, 다음생에 미륵부처님의 제자가 되는 인연을 짓는 행차로 간댄티파(사진 맨 앞)와 각 총림 방장, 주지 스님이 앞장선다. 행차길 옆으로는 이 모습을 보기 위해 모인 재가불자들이 북적인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증득한 성도성지 인도 부다가야. 그 중심인 마하보디 사원서 200m가량 떨어진 공터에 1월 8일 붉은 가사장삼을 수한 수천여 명의 티베트 스님들이 모여들었다. 전면 단상에는 2m 높이의 토르마(torma, 색을 입힌 버터로 만든 티베트 불교 전통 공양물)와 불단이 모셔지고, 불단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에 용수보살과 무착보살의 괘불이 걸렸다. 대승불교의 중관과 유식을 함께 익히고 이어나가겠다는 발원을 담긴 괘불 앞에 법주 간댄티파(Ganden Tripa)의 법좌가 놓였다. 법좌 좌우로는 각 본산과 사찰 방장·주지스님들이 법랍에 따라 앉고, 단상 아래에는 대중스님과 재가자들이 자리를 메웠다. 좌석 바깥으론 티베트 재가대중이 불단을 향해 몸을 던지듯 오체투지를 올린다. 600년 넘도록 이어진 티베트 불교의 전통 ‘묀람첸모(대기원 법회)’ 현장이다.

티베트 불교 겔룩파 스님들은 1월 8일부터 13일까지 엿새간 부처님의 성도성지 부다가야서 이 같은 대규모 법회를 봉행했다. 새해를 기념해 열린 법회에는 남인도 티베트 망명촌에 있는 겔룩파의 3대 본산(세라·대풍·간댄) 사원의 8천여 대중스님들이 운집했다. 겔룩파는 티베트 불교의 4대 종파(닝마·사캬·카규·겔룩) 중 하나로 달라이라마가 대표해 이끄는 종파다.

첫날, 법주인 간댄티파가 3대 본산 유나스님들의 영접을 받으며 법좌에 오르자 본격적인 의식이 시작됐다. 간댄티파는 14세기 겔룩파를 창시한 총카파 대사(1357~1419)를 대신하는 소임을 의미한다. 그 지위는 종교적으로 달라이라마와 동등할 정도로 높은 권위를 갖는다.

부처님 成道성지 부다가야서
3대 본산 8천여 대중 운집
엿새간 기도·토론 탁마하며
부처님 가르침 찬탄과 정진

중국 탄압에 법회 금지되자
인도 망명해 전통 이어나가
“더없이 소중한 기회·인연”


법회에서 부전스님들은 게송이나 말이 아닌 허밍(humming)으로 고음과 저음을 오가며 대중의 삼매를 돕는다. 이 음성은 삼매의 힘으로 수많은 청정 공양을 만들어 올린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어 스님들은 관세음보살의 화신인 타라(tara)보살을 찬탄하는 기도를 올렸다. 중생들의 고난이 사라지길 기도하고, 석가모니 부처님과 제불보살을 찬탄한다. 이와 함께 공양과 참회, 길상을 발원하는 기도문은 일체중생의 행복과 부처님의 정법이 증장되길 바라는 내용이 담겼다.

겔룩파의 ‘묀람첸모’는 1409년 티베트 수도 라싸에서 시작됐다. 총카파 대사가 이 세상에 부처님 가르침이 지속되길 발원하며, 부처님이 외도들을 신통으로 제압한 ‘사위성의 신변’을 기념하는 의미로 처음 개최한 것이 시초다. 이후 총카파 대사가 입적하고 나서도 제자들이 그 유지를 받들어 매년 새해에 법회를 봉행해온 것이 600년의 역사로 이어졌다. 다른 종파 역시 이 같은 뜻에 공감하고, 새해에 법회를 봉행하면서 대기원 법회는 티베트 새해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워낙 많은 인원이 모이는 탓에 중국 지배를 받는 본토 티베트에서는 문화대혁명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대기원 법회가 금지되기도 했지만 인도로 망명한 스님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부처님 가르침을 향한 기도를 잊지 않으며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이 법회는 엄격하고 딱딱한 의례라기보다 사부대중이 한 데 어우러져 부처님 법을 기리는 축제의 자리다. 정해진 경문이 있지만 암송을 기본으로 하는 티베트 승가에서 암송하지 못하는 스님과 재가자들은 또 다른 각자의 소임을 보며 법회에 힘을 보탠다.

알록달록한 색을 입힌 버터로 만든 토르마(torma). 꽃과 과일을 구하기 힘든 티베트의 전통공양물이다.

 법회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토르마’다. 토르마는 꽃이 귀한 티베트 고원지대에서 색을 입힌 버터로 꽃과 과일 모형을 만들어 공양하던 것에서 기원한 전통 공양물이다. 토르마를 버터로 만든 것은 버터가 티베트서 구하기 쉽고, 필수적인 일상식품이기 때문이다. 이번 법회를 위해서는 일반건물 1층 높이에 달하는 토르마 5개가 세워졌다.

대기원 법회에 참여한 티베트하우스코리아 원장 남카 스님은 “대기원 법회는 다른 일반적인 기원을 하지 않고 오직 부처님 가르침이 증장되길 바라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며 “이 법회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여러 조사스님들이 직접 예언하고 수희하신 것이다. 1년에 한 번뿐이어서 소중한 기회이자 귀한 인연”이라고 설명했다.

간댄티파와 대중 스님들이 부처님 정법이 증장되길 발원하며 정진하고 있다.

 13일까지 진행된 대기원 법회는 매일 오전 6시 반부터 오후 5시까지 가행정진 기도를 펼쳤다. 점심공양을 위해 잠시 휴식하지만 부전스님들이 돌아가며 기도를 끊이지 않게 한다. 또한 기도뿐만 아니라 공부의 장인 ‘잠양쿤최(Jamyag Kunchod)’도 함께 열렸다. 잠양쿤최는 매년 겨울 본산의 대중스님들이 모여 실시하는 인명학 토론이다. 이번 잠양쿤최는 인명학과 더불어 중관6론, 미륵5론까지 추가됐다.

학인스님들의 공부가 얼마나 깊어졌는지 확인하는 문답이 시원찮으면 도반과 강사는 물론, 방장스님과 간댄티파까지 질문을 던진다. 게다가 변변치 못한 질문과 답을 한 스님들은 제아무리 법랍이 높아도 대중적으로 창피를 당해 질문자도, 대답자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재가자들은 토론에 참여할 수 없지만 토론장을 둘러싸고 귀를 기울여 스님들의 문답을 공부한다.

모든 기도와 법회는 미륵불상을 가마에 태워 법회장과 마하보디 대탑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끝났다. 간댄티파와 각 총림 방장, 주지스님이 향을 든 채 앞장서고, 가마 뒤론 승속이 다함께 향과 꽃을 들고 한 목소리로 찬탄하는 게송을 외며 따랐다. 미륵부처가 세상에 다시 올 때까지 가르침이 지속되길, 그리고 미륵부처가 다시 왔을 때 그 제자가 되길 기원하는 티베트 불교의 전통은 세상에 법향(法香)을 전하며 장엄하게 회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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