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 현성 선사를 추모하며

하루도 쉬지 않으시던 원력 이어가겠습니다.

청천벽력이 어떤 것인지를 사무치게 알게 되었습니다. 은사 경하현성 대선사께서 그렇게 원적에 드실 줄은 그야말로 꿈에도 몰랐습니다. 신년벽두, 1월 20일 혹한의 새벽에 들려 온 은사 스님의 열반 소식은 차라리 꿈이길 바랐지만, 청천벽력의 믿지 못할 현실이었습니다.

창졸지간에 닥친 일, 경황없이 5일장으로 영결식과 다비를 마치고 나니 새로운 슬픔과 회한이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합니다. 손수 건립하여 자비행을 펼치시던 도선사포교당 현성정사가 텅 빈 듯 허허롭고, 억척같은 원력으로 도량을 단장하고 확장하신 도선사가 꿈속의 집인 듯 아득하기만 합니다.

출가 사문이 중생을 위한 원력에 매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지만, 은사 스님만큼 많은 일을 일생동안 지속하기도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은사 스님은 하루도 쉬지 않으셨습니다. 매일 삼베처럼 짜인 일과를 어김없이 지키셨습니다. 혜명양로원, 안양교도소, 민주평통 서대문협의회 사무실, 동국대학교, LA동국대학교, 중앙승가대학교, 청담학원, 각급 부대의 군 법당과 논산훈련소 법당, 청소년교화연합회 등등 손이 미치는 곳은 언제나 손길을 드리우셨고, 눈길이 닿는 곳은 한 틈이라도 놓칠세라 꼼꼼히 살피셨습니다.

1월 20일 입적한 현성 스님(사진 왼쪽)과 상좌 마가 스님(사진 오른쪽)이 함께 한 사진.

그래서 훈장과 상장, 표창장, 감사장과 공로패 등을 무수히 받으셨고, 크고 작은 직책 또한 수없이 맡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수상과 직책을 자랑으로 삼기보다는 진심어린 노력과 봉사로 수상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셨고, 주어진 직책의 이름값을 다 하셨으니 단 한 숟가락의 ‘공밥’도 드시지 않으셨음을 상좌로서 늘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은사 스님께서는 우람한 체구와 과묵한 표정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고 자상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다가가지는 못하지만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쉽게 돌아서지도 못하는 어른’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은사 스님의 풍모요 가풍이었거니와, 무슨 일이든 원력을 세우면 끝까지 매진하시는 기질 또한 함부로 흉내 내지 못할 출격장부의 표상이었습니다.

아, 이제 텅 빈 세상을 천둥벌거숭이로 서고 보니 은사 스님의 모든 것이 가르침이었음을 사무쳐 깨닫습니다. 흰 눈썹 아래 형형하시던 그 안광이 대자대비의 광명이었음을, 우뢰와 같은 질책의 목소리가 수미산도 무너뜨릴 사자후였음을 뼛속까지 깨닫고 또 깨닫습니다.

은사 스님, 잠결에 건너가신 극락 세상에서 영겁토록 정토의 햇살을 쏘이시고 도솔천의 맑은 물소리 들으시며 무생법인 하소서. 적멸의 즐거움을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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