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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왜 돈을 ‘복’이라 하셨을까?

기사승인 2018.02.02  14: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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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돈’에 대한 인식

그림 박구원

부처님은 왜 돈을 많이 벌라고 하셨을까?

은퇴하고 나서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람이 많다. 더구나 화려한 직장 생활이나 권력의 정점은 아니더라도 높은 자리에서 거침없이 살던 사람일수록 우울증의 정도가 심하다고 한다. 은퇴하면 뭐 할거냐는 질문은 나이든 사람이 자주 듣는 질문이다. 은퇴하면 편하게 사는게 좋을까 계속 다른 일을 찾아서 하는게 좋을까?

〈나는 몇 살까지 살까?〉라는 저서는 1,200명을 어렸을 때부터 80년간 추적 조사한 연구결과다. 연구를 처음 시작했던 교수는 평생 연구하다가 제자에게 물려주고 제자는 또 제자에게 물려줘서 80년을 지속했다. 연구에 의하면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는 사람보다 끊임없이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더 오래 살았다. 행복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행복하다면 대한민국에 행복한 사람은 제법 많을거다. 빈부 격차로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상당한 숫자이기 때문이다.

부자 대부분이 평생 일해
‘일’ 자체를 즐기는 것이
인생서 ‘돈’ 버는 지름길

만약 죽을 때까지 일하는게 건강에 좋고 행복하다면 사업하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돈을 벌어야 한다. 과연 이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돈은 멀리 할 이유가 없으며 참으로 좋은 것이라는 불교의 경제관을 말하면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 특별히 사업하는 사람 중엔 나에게 고마워하는 사람도 여러 명 있었다. 어떤 사업가는 나이가 들어 아직도 열심히 사업을 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이제 사업은 그만두고 노후를 보내라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자기가 유난히 돈에 집착하여 사업을 그만두지 못하고 아직도 ‘돈, 돈’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내 말을 듣고는 이제 당당하게 죽는 날까지 돈을 벌겠다고 했다.

미국에서 부자를 조사한 결과 부자는 대부분 기념일에도 쉬지 않고 일하고 평생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노후에 은퇴하지도 않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했다. 어떤 사업가는 나에게 ‘나보고 왜 계속 일하느냐고 하지만 이만큼 재미 있는 일이 없어요’라고 했다. 사실 아무리 재미 있는 일도 계속하면 재미 없지만 일은 평생해도 재미 있다는 사람이 많다. 매일 놀면 금방 재미 없어지지만 일하면서 틈나는대로 놀면 노는 순간이 너무나 즐겁다. 일하고 있기 때문에 노는 순간이 재미 있는데 잘못 생각하여 놀기만 해야겠다고 일을 그만두면 노는 생활도 얼마 안가 지겨워진다.

예술가가 죽는 순간까지 작품활동을 하면 훌륭한 일로 칭송을 받는다. 피카소는 90이 넘도록 살았는데 90이 넘어서도 작품활동을 했고 사람들은 예술적 열정을 가진 사람으로 피카소를 이야기 한다. 미국 대학은 정년퇴임 제도가 없기에 원한다면 죽을 때까지 교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70 전후에 은퇴를 한다. 유명한 석학 중엔 죽을 때까지 가르치고 연구하기도 하는데 워낙 학과에 기여를 하니 나이가 들어 은퇴하지 않는다고 후배교수들에게 천대를 받는 일은 없다. 실력도 없는 교수가 은퇴하지 않고 버티고 있으면 학과 회의에서 젊은 교수들이 면박을 주어 스스로 은퇴하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버클리대학에서 박사과정에 있을 때 버클리대학에 있는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 교수 중 한 명이 80세가 넘어 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 교수는 병원 침대에 누워서도 제자가 문병 오자 논문 주제를 같이 의논해서 다른 문병 온 학생을 감동시켰다. 그야 말로 죽는 날까지 학문의 길을 갔다는 모범적 에피소드다.

예술이나 학문 뿐만이 아니다. 테레사 수녀도 죽는 순간까지 인도의 빈민가에서 봉사 활동을 했다. 슈바이처 박사도 아프리카에서 죽는 순간까지 환자를 치료했다. 만약 어떤 사업가가 죽는 날까지 돈을 벌었다고 하면 훌륭하다고 칭찬을 듣기보단 노욕을 부렸다고 손가락질 당한다. 돈 버는 일처럼 더러운 일은 한시 빨리 손을 떼고 은퇴한 뒤에 더 좋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걸까? 100세 시대에 죽는 순간까지 일하는 것은 미덕이 아닐까? 가뜩이나 수명 연장으로 노인세대를 봉양해야 하는 젊은 세대의 세금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계속 일하는 노인은 사회의 귀감이 아닌가? 그러나 사회는 죽는 날까지 돈을 버는 사람을 존경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돈이 인류역사상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시대에 살면서도 아직도 돈에 대해서는 존중의 마음이 없는가보다. 모두가 ‘돈, 돈’하면서도 죽는 날까지 돈을 버는 사람은 존중하지 않는다. 원수 같은 돈 때문에 너무 많은 고통을 겪다보니 돈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돈에 대해서는 멸시하는 마음이 있다. 게다가 깨끗하게 돈 버는 사람이 없다는 인식이 팽배한 탓에 사업가에 대한 이미지도 좋지 않다.

부처님은 ‘돈’ 가치 평가 안해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돈’
편견없이 벌고, 좋은 일에 쓰자


돈을 번다는 일은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합법적으로 내 주머니로 옮기는 일이다. 강제로 돈을 옮기면 강도이고 몰래 옮기면 도둑이다. 강도나 도둑이 아니면서 돈을 이동시킨다는 일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고 하지만 돈 버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 그러다보니 사업의 세계만큼 치열하고 힘든 세계가 있을까 싶다. 사업의 세계에는 왜 그렇게 똑똑하고 기발한 사람이 많은지 모른다. 그뿐인가. 독하고 모질고 안면몰수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지 않으면 돈을 놓고 싸우는 싸움에서 이기기 어려울거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돈이라면 치를 떨고 원수라는 표현을 서슴치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원수 같은 돈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처님이 많이 벌라고 하셨으니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부처님은 〈별역잡아함경〉에서 ‘벌이 온갖 꽃을 채집하듯이 밤낮으로 재물을 얻으라’고 설하셨다. 나는 처음에 이 구절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너무나 내가 생각하던 불교 경전의 내용과 상충되는 내용이었다. 그리곤 곧 ‘어쩌다 한 번 말씀하신거겠지’라고 생각했으나 유사한 구절이 반복해서 나오자 나는 의아해졌다. 별역잡아함경은 아함부 경전이다. 아함부 경전은 한국에서는 재가자 출가자 모두 읽지 않는 경전이다. 한국의 불자는 주로 금강경, 법화경, 반야심경 같은 대승불교 경전을 읽는다. 이에 비해 아함부 경전 같은 초기불교의 경전들은 세련미가 떨어지고 다소 투박하다.

대승불교 경전은 비록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라고 부처님이 설하신 경전처럼 서술되어 있으나 부처님이 쓰신 것 같은 형식을 빌어 후세의 불교인들이 서술한 것이다. 거의 모든 대승불교 경전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쓰여져 있지만 문헌학적 연구에 의하면 부처님 사후 후세 사람이 쓴 경전이다. 따라서 대승경전에 쓰인 내용은 불교적이 아니라는 ‘대승비불설’ 논쟁도 있었다. 비록 대승경전이 부처님이 직접 설하신 경전은 아니지만 불교교리에 기반하여 쓰여진 경전이므로 불교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아함부 경전 같은 초기불교 경전은 부처님이 직접 설하신 경전이므로 '부처님 직설'이라고 한다. 아함부 경전은 부처님의 말씀이 가장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경전이다. 초기불교 경전에는 돈에 관한 구절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후기에 쓰여진 대승불교 경전에는 돈에 관한 구절이 거의 없다는 것도 재미 있는 차이점이다. 부처님이 경제에 대해 많이 강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제자들은 경제의 중요성을 간과했거나 경제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여튼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나 초기불교 경전을 제외하고는 경제에 대한 구절이 거의 없다. 어쩌면 그러한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와서 오늘날 불자들도 경제와 불교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부처님의 경제관에 대해 ‘부처님의 부자수업’이라는 책을 쓰고 난 뒤에 여기 저기서 강연 요청이 들어왔다. 강연 내용이 그동안 생각해왔던 불교와 너무 달라서 충격을 받은 탓인지 화를 내거나 강하게 반발하는 사람이 있다. 예를 들어 경전에서 재물이나 돈은 깨달음을 상징하는 표현인데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경전에 재물이나 돈에 관해 쓰인 내용을 읽어보면 결코 깨달음을 비유하신게 아니다. 예를 들어 돈을 벌기 위해서 농업만이 아니라 장사, 목축, 부동산 임대업, 금융업을 하라고 말씀 하신 내용이 있는데 재물이나 돈이 깨달음이라면 구태여 이런 사례를 들 필요가 없다.

부처님이 돈을 많이 벌라고 하셨다면 세상이 온통 ‘돈, 돈’하는데 ‘불교 너마저도?’라고 한탄할 수 있다. 돈이 분명 원수지만 돈이 문제는 아니다. 불교의 세계에 모든 사물과 현상은 독자적인 실체가 없다. 따라서 돈이 나쁘거나 돈이 좋은 것은 아니다. 불자가 평생 수천번 낭송하는 반야심경에도 ‘모든 것은 공하여 ...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라고 설한다. 돈도 마찬가지로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다. 우리가 괜히 돈 탓을 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왜 돈을 많이 벌라고 하셨을까? 나보고 누가 돈을 왜 벌어야 하느냐고 물으면 ‘돈이 좋잖아요’라고 말하겠다. 부처님도 돈이 좋은 것이니 열심히 돈을 벌라고 하신 것이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욕망 앞에 정직할 필요가 있다. 돈이 있으면 얼마나 좋은가? 그러니 돈을 많이 벌라고 하신 것이다.

부처님은 〈증일아함경〉에서 ‘재물을 현재에 가지면 한량없는 복을 얻을 것이다’라고 설하셨다. 돈이 왜 좋은가하면 돈이 많으면 복 받은거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돈이 많으면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옷 입고 사람들에게 베풀 수도 있고 효도도 쉽게 할 수 있고 보시도 시원하게 할 수 있다. 얼마나 좋은가. 우리는 이렇게 사는 사람을 복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금색왕경을 보면 죽음으로 인한 고통(死苦)보다 가난으로 인한 빈통(貧苦)이 더 크다고 한다. 돈을 벌면 가난으로 인한 고통을 벗어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또한 돈은 자유로운 권력이라고 표현한다. 돈만큼 욕망을 충족하는데 자유로운게 또 있을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연말 선물로 가방을 주었다고 하자. 그 사람이 가방을 싫어하면 선물로서는 실패한다. 그 사람이 가방을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디자인이 아니라면 역시 선물로서는 실패다. 조금 더 선택의 여유를 주기 위해 상품권을 주어도 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제한되어 있으니 여전히 제약이 많다. 제일 좋은 선물은 현금이다. 현금을 받으면 가방도 살 수 있고 옷도 살 수 있고 여행도 갈 수 있고 그냥 현금을 가지고 있으면서 투자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선물할 때는 누구나 돈이 최고라고 이야기한다. 돈이 있으면 좋은 물건 살 수 있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다. 돈이 많으면 어떤 물건도 살 수 있고 어떤 일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자유로운가?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한다.

윤성식 고려대 교수 hyunbulnews@hyunbul.com

<저작권자 © 현대불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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