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려고 준비하다 보니 35년간 살았던 살림살이의 규모가 엄청났다. 버리고, 남 주고, 팔면서 그동안 보물인 양 모아놓은 것들이 어찌나 많은지 감당하기 힘들었다. 모르긴 해도 내가 버린 책들만 1톤 트럭 하나는 될 것으로 보인다. 제주를 떠날 때의 마음은 ‘희망이 길을 안내할 것’이라는 희망 하나였다. 그래서 선뜻 떠나기로 했지만 그 긴 세월의 흔적을 지우는 데는 물질뿐 아니라 정신 문제가 더 크게 나타났다. 명상센터 운영과 관련된 사람들, 운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이분들과의 관계에서 만들어낸 일과 사연들이 줄
얼마 전 35년간의 제주생활을 하고 떠나는 나를 위해 송별회가 열렸다. 많은 분들이 자리를 메웠고, 수시로 이분 저분이 나에게 다가와 이별의 마음을 나누었다. 어떤 분들은 떠나는 나를 원망하거나 안타까워했다. 그분들 중에는 내가 제주에 계속 살지 못하고 가게 됨을 자신들의 부족한 마음 때문이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이러한 송별회를 경험하면서 문득 송별회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명상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는 나눔의 장이라고 보았다. 서로가 어디에 가서 살든 건강하고
이제 8월이 지나면서 제주국제명상센터에서 할 일은 다 하게 됐다. 어느 날 문득 뒤 돌아보고 ‘나는 지난 세월 이런 일을 했어’라고 나를 떠올리면 어떤 마음일까? 이 말은 금강경에 나오는 나를 비우는 ‘아공(我空)’과 배치되는 말이다. 그럼 뭐라고 말해야 하나.나는 제주에 와서 지난 35년간 많은 일을 했다. 그 중에서도 제주국제명상센터를 설립하고 상담과 명상분야를 활성화한 일은 제주사회에서 특별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순간 나는 상(相)을 갖게 되면서 ‘나’와 다른 사람간의 경계를 짓게 된다.달마대사가 인도
이 세상에는 명상과 행위가 하나 될 때 완전한 성취에 이르는 경우가 있다. 오래된 얘기지만 우리는 해방 후 1947년 미국의 보스톤 마라톤에서 우승한 서윤복 선수의 마라톤 정신을 기억한다. 경기 중 길가에는 마라톤 선수들을 격려하려는 키스 축하객들이 몰려들었지만 서윤복 선수는 이들을 뿌리치고 달리기만 했다. 오로지 목표 외에는 어느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 길가에서 개가 뛰어들어 서 선수의 경기를 방해하여 넘어지면서 다른 선수들보다 뒤처졌다. 그러나 서윤복 선수는 좌절하지 않고 달렸다. 이처럼 서윤복 선수는 어떠
나는 매일 제주에서의 삶을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적당한 시기에 떠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떠나려는 이유는 이곳이 부적절한 곳이 되어서다. 제주국제명상센터의 이사장직을 그만둔 입장에서 기존에 사용하던 방을 계속 사용할 수도 없거니와, 더 이상 나의 역할이 명상센터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매주 1회 명상지도사 자격과정을 강의하는 것과 토요일마다 하는 전문상담사 슈퍼비전이 있어서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일을 수행이라고 생각하며 수행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자
마음 지혜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있다 붓다, “변화가 존재 본질” 강조해인생의 변화 존중하고 받아들여야이 과정서 ‘영적 성장’이 이뤄진다지금부터 마음 수행을 시작해보길어느 날 잠자리에서 눈을 떴을 때 내 가슴에서 찬바람이 일어났다. 지난 몇 달간 명상센터 차기 이사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겪은 아픔들이 쌓여 무의식으로 나타난 결과이다. 이제는 제주를 떠나고 싶다. 아픔에도 때가 있는가? 돌아보면 태어나서 지금까지 왜 이렇게 아픔이 반복해서 일어나는가? 아픔도 파도처럼 순환이 일어나는가? 최근의 일을 보면 동료와의 지루한 갈등, 이
나는 지금도 그때의 일이 후회스럽고 부끄럽다. 15년 전쯤 제주국제명상센터 건축의 일환으로 하수로 공사를 하면서 후원금을 받은 일이 결과적으로 더 많은 공사비를 지불한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 나름으로는 후원금을 받았으니 후원금만큼 절약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공사한 분들은 후원금만큼 더 싼 자재를 사용함으로써 소위 부실공사를 초래하였음이 드러났다. 겉으로 보이는 이익이 보이지 않은 곳에서 손실을 가져왔으니 눈앞의 욕심으로 눈 밖의 피해를 가져온 것이다. 사실 후원금을 받을 그때는 공사를 한 그분
‘행복하다’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지금도 어린 시절 그때가 떠오른다. 할머니와 김을 매다가 힘들면 밭 둑 잔디밭에 누워 흰 구름 떠다니는 하늘을 바라보던 모습이다. 아지랑이 아롱거리고 나비와 잠자리가 날아다니던 그때가 내 기억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다가온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이처럼 ‘행복하다’라고 하면 우선 먼저 기억 속에 어떤 상황이 함께 떠오른다. 언덕 위 바위에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본다든가, 길가 노란 수선화와 복수초가 환하게 피어있는 모습, 까치와 참새 떼가 날아다니는 것 등,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자연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를 내려놓아야 나도 세상도 편안해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왔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이제 내가 가야할 삶의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지난 번 칼럼에서 한라산에 올라갈 때는 백록담에 도달하겠다는 목표가 있지만 내려갈 때는 출발지가 목표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제주국제명상센터에서 일을 할 때는 상담과 명상으로 ‘세상’과 함께 하는 것이지만 일을 멈출 때는 ‘참 나’를 만나는 일이라고 했다.이제 ‘참 나’를 만나러 가야 한다. 지금까지 명상센터를 위해 열심히 달려왔다. 이제 남은 일은 쉬면서 ‘참 나’를 만
한라산을 처음 올라갈 때는 정상에 있는 백록담이라는 신비로운 못을 상상하면서 고통을 견디며 올라간다. 오름길이 거칠고 힘들어도 백록담에 대한 기대가 고통을 감소시킨다. 뿐만 아니라 발밑과 눈앞만 보고 가니까 통증으로 주의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같은 길을 두 번 세 번 올라가게 되면 정상까지 얼마가 남았는지를 헤아리게 된다. 더 자주 남은 거리를 생각하게 되고 추진력도 떨어진다. 그러나 정상에 이르면 도달했다는 성취감을 느끼며 모든 피로가 풀리고 천천히 사방을 바라보며 기분을 만끽한다. 그리고 내려갈 것을 생각한다. 내려갈 때는 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