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누가 죽인다 하더라도 나는 죽일 수 없습니다

 팔자가 있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운명이 있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여러분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그래서 나는 항상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없다. 여러분이 가정에서 손자가 왔을 때는 할머니가 되고, 금방 남편이 들어오니까 아내가 됐습니다. 자동적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들어왔습니다. “어머니!” 하니까 금방 어머니가 돼 버렸죠. 그렇듯이 어떤 것이 될 때에 나라고 할 수 없는 것이 마음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것을 할 때 나라고 할 수 없듯이, 여러분이 애기 적이 나입니까, 젊었을 때 나입니까, 늙었을 때 나입니까? 나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이름해서 부처라고도 하고 이름해서 하나님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따라서 이름을 놓고선 상표처럼 내 거니 네 거니 그런 싸움을 하실 필요가 없죠. 그 속에 진짜 알맹이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나는 서울에서도 기독교, 가톨릭교, 무슨 알라신교 이런 거 모두, 불교든지 모두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선원에는, 선원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항상 환경에 따라서 우리는 모든 사람들한테 마음을 아주 공편하게 이끌어 준다고 그럴까요? 누구한테든지. 한 가정에도 남편이 술을 먹고 때리고 온통 집안을 부숴 놓는다 하더라도 그거를 진짜로 건지려면 말로 하지 말고 이 마음 주인공 자체에, 모든 것은 주인공, 너도 주인공이 있고 나도 주인공이 있으니 주인공에 스위치를 눌러 놓으면, 거기에서밖엔 해결 못한다 하고 맡겨 놓고 평등한 마음으로 웃으면서 받아들여 주고 또는 부드러운 말로 해 줄 때, 한 번 두 번 세 번 자꾸 이럭할 때는 그 사람 마음이 슬그머니 봄눈 녹듯이, 아니 추운 겨울의 얼음이 녹아서 봄이 되듯이 그렇게 녹아 버립니다. 녹아 버리고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그 모든 생활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마음도 달라집니다. 서로 전기가 들어옵니다.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이것은 기정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자식이 나쁘게 해도 “저놈의 새끼, 나가서 뒈지지도 않아.” 이런 욕들을 하는가 하면 남편이 나가서 저거 한다면 “저놈, 저놈! 오다가 차에라도 치여 죽지 않아.” 이런 소릴 하는 걸 내가 많이 들었거든요. 화가 난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말을 내뱉는 것은 그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입니다. 이 마음 하나가 그렇게 구덩이에 빠뜨려서 죽일 수도 있고, 사랑을 가져오고 구덩이에서 건져 낼 수도 있는 이런 위력을 가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불교에서도 그렇고 모두 타의에서 구하는데, 요만한 꼬리표 하나 붙여 놓고, 요만한 전등 하나 켜 놓고 그걸 인등이라고 하거든요. 그게 될 일입니까? 마음을 냄으로써 그것이 마음의 인등입니다. 마음을 냄으로써 마음이 밝아짐으로써, 이건 자가발전소와 같은 겁니다. 그래서 한생각을 잘하면 그게 인등을 백 번 천 번 켠 거보다도 더 위력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깝게 내 보배를 내가 두고도 써먹지 못하고 항상 바깥에서 그런 꼬리표나 붙이고 다니고 이러는 마음이라면, 여러분이 귀신 짓을 하니까 귀신이 있는 거지 귀신 짓을 하지 않는데 어찌 귀신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사람입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의 행과 사람의 말과 사람의 생각이 그렇게 투철해야, 세 가지가 투철해야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세 가지가 동일하지 않으면 따르질 말라는 얘기입니다. 왜? 행과 말과 마음 이 세 가지가 동일해야 돼, 따르는 것도. 믿으라는 게 아니야. 고깃덩어리 믿으라는 게 아니야. 이름 믿으라는 것도 아니고, 상표 믿으라는 것도 아니고, 허공 믿으라는 것도 아니야. 자기한테 직결돼 있거든, 모두가. 그래서 모든 것을 누가 잘못했다 잘됐다 하기 이전에 자기부터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여유를 가지고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하고, 이런 까닭에 자식도 잘되게 할 수 있고 또는 남편도 잘되게 할 수 있고, 부모한테도 묵은 빚을 갚을 수 있고 자식들한테도 햇빛을 영원히 줄 수 있는 겁니다. 지금 살면서 이런 의식을 가지고 몸이 죽는다 하더라도 그 의식의 차원이 삼차원 그대로 있기 때문에, 이차원 그대로 있기 때문에 그냥 그 차원대로 의식이 이 세상에 또 출현을 할 겁니다. 콩 난 데 콩 나고 팥 난 데 팥 나듯이.


그러니 지금 세상을 돌아보십시오. 사람도 정치인들은 정치인들대로 모여 있고 또는 공학을 하는 사람은 공학, 생물학을 하는 사람은 생물학, 천문학을 하는 사람은 천문학, 이렇게 모입니다. 그런데 물건도 보십시오. 가게 좀 가 보세요. 사과는 사과대로 놓여 있고 배는 배대로 놓여 있습니다. 금은 금대로 놓여 있고 넝마는 넝마전에 놓여 있죠. 그러니 누가 갖다 놓고 안 갖다 놓고 간에 금 있는 덴 금이 모여 있게 마련이죠.


그러니 여러분이 살아나가는 그 도리가 바로 어디에 있느냐는 문제입니다. 책에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있는 겁니다. 책은 거름일 뿐입니다. 여러분의 그 마음으로 싹을 내고, 씨가 터서 싹을 내고 바로 열매를 맺게 해서 그게 무르익으면 그 무르익은 과일 하나가 만 가지 맛을 낼 수가 있는 그런 위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무르익은 과실 하나에는 내년에 심을 씨도 또 있거든, 맛도 훌륭하거니와.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한 철 날 때에 이 영원한 이 뜻을, 이 도리를, 이 법을 모른다면 싸우다가 볼일 못 보고 항상 그렇게 살다가 마음세계로 승진을 하느냐, 냄새만 맡고 사는 하세계로 좌천을 하느냐는 문제가 있죠. 여긴 삼차원의 세계입니다. 이것이 바로 체로 걸러 내는 세계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잘못 쓰면 그렇게 한 가정이 파괴도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 사랑, 말로만 사랑하지 말고 실천궁행하는 데 사랑을 하도록 하는 거….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난 어려서부터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남한테 내가 물방울 하나도 얻어먹은 사이가 없겠죠. 그러나 이런 게 있습니다. 아프다고 한다면 천리만리에서 전화가 와도 “예, 알겠습니다.” 공손히 대답합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이 세상에 몸뚱이는 강을 건널 수 없지만 마음은 강을 건너고도 남음이 있고 은산철벽을 뚫고도 남음이 있고 불구덩이에도 타는 법이 없죠.


또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살아가시면서 의식은 벌써 불구덩이에 들어가면 타 죽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물에 들어가면 빠져 죽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요 세 가지만 말하죠. 또 산이 높으면 우리가 넘어가지 못한다는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죽어도 그렇게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죽어도 높은 데 못 건너가고, 빠져 죽을까 봐 못 가고 불에 타 죽을까 봐 못 가고 아이, 이러니 자기 갈 자리를 가겠습니까.


승천이니 천당이니 하는 것도 자기가 현실에 그 도리를 알아야지. 또 알면 천당이니 지옥이니 하지도 않아요. 그런 언어도 붙지 않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기 때문이죠. 길을 알기 때문에 걱정도 안 하죠. 무슨 천당 지옥 이런 언어도 붙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갈 길을 걱정도 안 해요. 그런데 그런 걸 모르기 때문에, 난 “흥, 사람이 죄가 뭐 있던가. 모르는 게 죄지.” 항상 그러죠. 나는 죄가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난 팔자가 있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운명이 있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여러분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마음먹고 한생각을 잘못하면 팔자를, 운명을 그렇게 가져올 것이고 한생각을 잘하신다면 팔자 운명은 바꿔지고 체질도 바꿔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불교다 가톨릭교다 기독교다 이런 걸로 인해서 대립이 되고 싸우고, 기독교끼리도 대립이 되고 싸우고 신도를 세워서 강당을 팔고 이러는 장사꾼이 되지 맙시다. 또 불교도 역시 뼈다귀를 팔고 우리고 이름을 팔아서 목탁을 쳐서 먹고사는 중이 돼서는 절대로 또 아니 되겠고요. 모두가 다 그렇습니다. 나는 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전에도 그랬습니다. 지금 누가 죽인다 하더라도 나는 죽일 수 없습니다. 몸뚱이는 산산조각이 나서 가루가 된다 할지라도 나는 죽일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로.


여러분, 그것을 진실하게 아셔야 합니다. 지조를 잘 지키시면서, 한국 분들도 한국의 지조를 지키시면서 우리가 서로 한마음으로 뭉쳐서, 열 사람이 한 사람을 살리려면 살릴 수 있지만 열 사람이 한 사람을 죽이려면 금방 죽이고 금방 미치광이로 만들 수도 있는 겁니다. 그래서 잘못한다고 하기 이전에 여러분 말마따나 서로 자비를 베풀면서, 한 사람을 건질 수 있는 것은 말없이 행동으로 실천에 옮기는 데 문제가 있는 겁니다.
오늘 저는 이만 하겠습니다마는 질문하실 분이 있으면 하십시오. 이렇게 질문하시다 보면 아주 배울 점이 많습니다. 정말이지 이런 아우트라인만 듣고서 하는 것보다도, 이론 쪽으로만 이렇게 흘려버리지 마시고 진실하게 생활 속에서 그대로 실천하는 법을 우리는 모두 배워야 되겠죠. 알아야 되겠죠.

질문자1(남) 아까 자유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어떤 자유를 말씀하시는지요. 그 어떤 종교라든가 어디에 속해 있는 것도 자유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그런 데 속해 있으면 저희가 자신을 찾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자유를 말씀하시는지 그걸 대답해 주시고요, 그다음에 사랑이라고 그러면 마음적인 사랑과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거, 여러 가지 사랑이 있고 그 다음에 또 육체적인 사랑, 정신적인 사랑이 있는 걸로 보는데 어떤 사랑을 해야 가장 힘 있는 사랑이 될 건지를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큰스님 사랑이라는 것은 우리가 꼭 말을, 사랑이라고 말을 해서 사랑은 아닙니다. 단 하나, 지금 아들이 나갔다고 봅시다. 이 지금 무의 세계, 무심적으로 얘기합시다, 이게 진짜 사랑이니까. 그런데 늦게까지 안 들어온다 하더라도 ‘얘, 너도 주인공이 있으니까 너를 끌고 다니는 너 주인공만이 빨리 데리고 들어올 거야, 아무 사고 없이.’ 하니까 빨리 들어오거든요. 응? 철학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철학이라는 언어도 붙지 않는 겁니다, 그게, 진짜 사랑은. 그렇게 해서 그 자식이…. 여러분은 그런 걸 한번 실험해 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실험 한번 해 보십시오. 어떤 것이 진짜 사랑인지 아시게 될 겁니다. 또 앞서 말씀하신 건 뭐죠? 난 잊어버렸으니까요.


질문자1(남) 아, 자유 말씀하셨습니다, 자유.


큰스님 자유, 참. 자유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유스럽다는 것은 아까도 얘기했지만 이 몸에 모든 생명들의 의식이 있습니다. 안으로는 이게 오대양 육대주도 됩니다. 이 공장이, 여러 공장이 많습니다. 소임을 맡아 가지고 공장장들이 많이 있죠. 그런데 어느 부분이 정말 파워를 일으켰다 이런다면 ‘아, 거기서 파워를 일으켰으니까 거기서 해결할 수밖엔 없잖아.’ 하고 모든 입력을 넣는다면 그냥 입력을 넣는 동시에 바로 전체가 움죽거리게 됩니다.

왜? 아까도 얘기했죠? 거기 모든 시스템이 돼 있다고요. 탐지기, 또는 팩스…. 팩스는 무슨 역할을 하는 줄 아십니까? 그게 신족통입니다. 즉 말하자면 내가 A형인데 저 타의에서, 무정물이나 식물이나 동물이나 전부, 이 해산물이나 모두…. 흙도, 진흙도 약이 됩니다. 그게 액체가 있습니다. 액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A형을 갖다가 넣으면 기가 일어나듯이, 그러니까 모든 일체 만법을, 모든 걸 자유껏 할 수 있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도 다 이렇게 넣어서, 내가 기가 부족하면 기도 넣어. 그것도 너무 많이 넣으면 안 되니까 알맞게.

내 몸뚱이 내가 더 잘 알아. 내 몸뚱이 내가 더 잘 아는데 그게 아는 게 아니라 이 컴퓨터가 아예 그냥 다 해 버려. 그 시스템이 다 해 버려. 왜냐? 탐지기죠, 팩스죠, 또는 무전통신기죠, 레이더망이죠, 또 망원경이죠, 컴퓨터죠. 허허허. 이것이 다 아주 해 버리거든요. 우리 사는 생활도 이것이 다 해 버리거든요. 이 마음먹고 그냥 해 버리는 거를 여러분은 그것을 한번 실험을 해 보지 못했던 관계상 이러는 겁니다. 이것이 자유인인 것입니다. 모든 걸 내 안에서부터 바깥으로, 바깥에서부터 직결된, 또는 가설이 된 이 우주 전체하고도 우리는 서로, 꽃 이파리 하나하고도 서로 대화가 이루어지니까요. 날아가는 새들도 같이 대화가 이루어지고 저 서 있는 돌하고도 대화가 이뤄지고. 이것도 그냥 있는 게 없습니다. 전부 돌아갑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유스럽지 않겠습니까. 아, 새들도 모여서 조잘거리면서 말입니다, 저 집은 어디가 어떻고 어떻고 이런 얘기들을 합니다. 그리고 또 저런 나무들도 말입니다, 목신이 다 있고, 지신이 다 있고 모두가 자기의 자성신 없는 게 없어요. 생명이 있다 하면 다 있어. 그런데요, 산에 올라가도 모두 친구고 벗인데 아이, 뭐가 두렵고 무섭겠습니까. 또 내 몸이, 이것이 공해 버렸어. 내가 이것도 될 수 있어. 누구를 건지려면 아, 개구리를 건지려면 내가 개구리 속에 들어가야 개구리가 저항력을 느끼지 않지 않겠습니까? 진짜 사랑한다면 개구리가 돼야죠. 그래서 개구리가 돼야 개구리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단 말입니다. 그런 걸로 인해서 모든 연구와 더불어 실험과 체험을 하기 위해서 나는 십 몇 년이라는 세월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불교다 가톨릭교다 기독교다 이런 상표에 놀아나지 마시고 진짜 기독교인이라면, 진짜 불교인이라면 불교나 기독교나 따로 없다고 생각하시고, 이거는 이 지구도 바로 내 집이니까 이 지구도 좀 더 수명을 보존하려고 생각하신다면 내 한생각의 그 도리를 아셔야 될 겁니다. 내 몸도 내 맘대로 이끌고 다닐 수 있고 또…. 이런 게 있죠. 익지 않은 콩깍지는 그걸 까려면 속이 죄 붙어 있어요. 그래서 아픈 거예요. 3년도 앓고 그저 4년도 앓고 몇 년도 앓고 이렇게 고통을 받다 죽지만 콩깍지가 익은 거는 건드리기만 해도 콩깍지가 탁 까져요. 그러면서도 콩은 아주 잘 여물었거든요. 그러니 내년도 또 바라볼 수 있는 거죠. 그 얼마나 좋은 겁니까. 그와 같이 인간도 그렇단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차원을 기르면서 사랑하면서 실천하면서, 조금도 욕심은 부리지 말고, 아집이라는 거 이런 것도 좀 빼 버리고 ‘내가 이런 권세가 있는데….’ 이런 것도 빼 버리고 그런 걸 하면서도 함이 없이, 권세가 없이 한다면 그것이 바로 너그러운 자비,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아닐까요? 하하. 님은 모두 님이죠. 아름다운 님이시여! 그런 것도 있죠.

나는 항상 시골길도 가면서, 여기 길도 가면서 차를 타면서도 언제나 한 소식 읊고 다닙니다. 왜? 어떤 때는 내 가슴에 아휴, 흙물이 내릴 때가 있고 핏물이 내릴 때가 있고 맑은 물이 내릴 때가 있고, 여러 가지가지…. 그 골짜기에는 너무도, 이거다 저거다 할 게 없이 장마가 들면 그냥 흙물이 내려옵디다. 내 가슴의 골짜기에는 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가, 인간은 죄도 없고, 모르는 게 죄기 때문에 이런 도리를 좀 더 아셨으면 하는 그런 마음에서 나는 그저 여기에다가….

서울에서도 보면 정신병원에 그 귀여운 아들들을 갖다 넣고는 그냥 잠자는 약만 먹여서 모두가 살이 비대해지고 허청 걸음을 떼고, 죽을 때만 바라고 있는 그 부모의 가슴 아픈 거를 생각할 때 기가 막힌 일들이 한두 건이 아닙니다. 여기 와 보면 마약 중독 또는 길에 늘비하게, 뉴욕의 맨해튼에서도 보면 그냥 늘비하게 드러누워 있는 것도 많이 봤습니다. 또는 자식을 귀엽다고 그렇게 애지중지했는데도 그냥 나가서 나쁜 짓 하고 몰려다니면서 그런 거나 하고 저런 거나 하고, 그렇게 하고 다녀서 어머니가 땅을 두드리고 우는 것도 많이 봤습니다.

그리고 정신병자로 인해서 서울은 지금 무척 혼란이 일고 있고, 지금 여기도 내가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제 생각으로 쭉 한번 본다면 청년들이 많이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또 생명들을 죽이고 이기고 그러려고 그 모든 것을 연구하는데, 무슨 핵이라든가 수소폭탄이라든가 이런 거는 옛날에 벌써 만든 거지마는 지금도 잠수함 이런 쪽으로, ‘어떡하면 작으면서도 큰 거를 해칠 수 있을까’ 이런 걸로 연구들을 하기 때문에 공해가 앞으로는 점점, 지금 삼분의 일이 왔으니까 망정이지 만약에 삼분의 이가 온다면…. 여러분은 그래도 기를 자기 소임껏 넣어서 자유스럽게 쓸 수 있는 그런 자력이 있어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 보이는 것만 약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거, 즉 말하자면 여기 불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 전력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은 보지 못하시죠. 그 전력이 들어오고 나가는 건 보지 못해도 전기가 들어와서 밝은 건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약, 그 액체도, 에너지도, 모든 것을 가져오는 것도 오는 사이 없고 갖다 주는 것도 가는 사이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러죠. 여기 미국 분들도 병원에서는 고칠 수 없다 그런다고 엊그저께 와서 울부짖고 있더군요. 그러니까 우리 사무장님이 “아이, 이 부인을 병원에서 고칠 수가 없다니 어떡합니까?” 그러더군요. “응, 무조건이야, 무조건. 몰라서 죄지 알면 죄를 저지르지 않아. 모두 사람들이 괴로운 것도 몰라서 죄지, 모르니까 괴롭지 왜 괴롭겠느냐.” 그러니까 무조건 그것은 그저 알았다고, 열심히 주인공밖에는 해결 못한다고 그렇게 해서 보내라고 했더니 그 사람은 지금 며칠 안 됐지만 완전히 자기가 자기를 고칩니다. 왜? “아휴, 스님 고맙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없었더라면 내가 어떻게 있어, 이 사람아. 그러니까 내가 고친 게 아니라 당신이 고친 거지. 그러니 당신이 언제나 용도에 따라서 오는 대로 그렇게 살면 스스로 자유인이 되고 스스로 재생인이 돼. 남들도 그렇게 건질 수가 있어. 그러니 그 도리를 알면 그것이 바로 생활 종교고, 그것이 바로 진리고 참선이고 그런 것이지, 뭐.” 이러곤 말아 버립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물질적으로 돈을 주는 것보다도 진짜 사랑을 하는 그 마음으로써 한생각을 던져 준다면 그렇게 큰 공덕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아까 지게꾼 이야기도 그런 공덕을 주지 않고 나무 한 짐으로다가 갚으려니 어떻게 그런 생각밖엔 없느냐고 그렇게 작대기로 맞은 거죠. 그러니 우리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 것은 우리 인간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지금 뭐를 하고 있는지, 여유 있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인간의 도리를 한번 생각해 보시면서, 우리가 종교 싸움을 하지 맙시다. 하하하, 내가 이런 것을 진짜로 원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 또 질문하시려면 하시죠.

질문자2(여) 스님, 앉은 자리에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큰스님 예.

질문자2(여) 아까 여러 번을 나, 나 하셨는데 나라는 걸 어디다 기준을 하십니까? 이 깨친 자리를 기준하십니까, 이 다리와 몸뚱이를 나라고 합니까?

큰스님 아니죠. 나라는 건 없는 거죠. 여러분, 나라는 것은 모두 여러분과 전체가 나, 납니다. 모두 각자. 만약에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어라, 하나님.” 이럴 때 각자 하나님을 믿으랬으면 빨리 알 건데 편집을 잘못해 놨을 거야, 아마. 허허허…. 나는 그럽니다, 항상. 편집하는 사람이 깨친 사람이라야 그놈의 게 잘됐겠지. 아니, ‘각자 나’라는 말을 왜 못하고 “나를 믿어라.” 이래 가지고선 그렇게 만들어 놨는지 모르겠다고 그러죠. 그러니까 나, 나라는 거는 없습니다. 왜냐? 아까 얘기했죠. 내가 어머니가 됐다 금방 형제가 됐다 금방 딸이 됐다가 아, 부인이 됐다 그러시면서 나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까 모두가, 여러분이 다 각자 나가 납니다, 이것도 이름해서. 어떡합니까, 말을 하려니까. 하하, 또 질문하실 거 없는지요? 허허허.

그러니 또 있으시면 말씀하시고요. 아이, 참 여러분하고 재미있게 오늘 저녁 지냈습니다. 오늘도 그렇고 이렇게 여러분과 더불어 한자리를 하게 만들어 주신 우리 사장님, 우리 사장님입니다, 하하하. 참, 감사하기가 이를 데가 없습니다.

※위 법문은 대행 스님께서 1990년 4월 24일 샌프란시스코 미야코호텔 초청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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