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4대 불교 성지 가운데 하나인 구화산(九華山)은 지장보살의 영지(靈地)이다. 옛 이름은 구자산(九子山)이었으나 이백(李白)이 이곳을 유람하며 “아름다운 봉우리를 가진 산이 연꽃과 같다”는 시구를 지어 구화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구화산서 김교각의 육신불 친견
이백 “봉우리가 연꽃 같다” 노래
99개 산봉우리마저 신령스럽다
九華街까지 우리를 따라온 여인
“식사만 자기 집서 해달라” 요청

누추한 집, 실망하고 나가려는데
깨끗한 물·수건 가져와 메뉴 권선
여인의 추천 메뉴는 바로 ‘석월초’
달밤 지장보살 발자국에 피어난 꽃
바람 소슬한 달밤, 그 여인 떠올라


우리나라와도 깊은 인연이 있는 산으로 김교각(金喬覺)의 육신보전(肉身寶殿)이 있다. 신라 33대 성덕왕의 둘째 왕자인 김교각은 24살의 젊은 나이에 이곳으로 건너와 화성사(化城寺)에서 75년을 수련하고 99세에 결가부좌한 상태로 입적하였으나 시신이 부패되지 않았다. 이후 스님은 지장보살로 숭앙되어 육신보전에 그의 육신불(肉身佛)을 모셨으니 구화산 99 봉우리마저 신령스럽다.

돌계단을 따라 올라온 배경대(排經臺)에는 스님의 두 발자국이 남아 있다.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경을 읽었으면 관세음보살도 감동하여 그 앞에 몸을 나타냈고, 봉황새와 푸른 용도 머물러 경소리를 들었을까.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해발 600m의 구화가(九華街)에서 숙소를 구하려는 아버지와 나의 뒤를 한 여인이 따라왔다. 우리가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뒤따라왔다. ‘저러다 지치면 그만 두겠지’ 하는 마음으로 걸었으나 여전히 따라왔다. 결국 왜 따라오느냐고 그녀에게 물었더니 식사만 자기 집에서 하면 인근의 사찰을 성심껏 안내해 주겠다는 것이다.

대화를 나누면서 바라본 그녀는 화려하지 않았으나 깨끗한 차림의 젊은 여인인지라 거절할 수 없었다. 그녀는 많은 식당을 버려두고 마당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둘러선 작은 집들 가운데에서 가장 누추한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냥 나가면 그녀가 실망할 것 같아서 약간의 돈을 놓아두고 일어서려는데 여인이 세수 대야에 물을 떠오고 비누와 깨끗한 수건을 건네주었다.

우리가 씻기를 끝내자 그녀는 따끈한 차를 하얀 수건으로 덮어진 컵에 따르며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이 없는지 조용히 살폈다. 이윽고 우리가 권하고 싶은 음식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메뉴판을 가리켰다.

‘석월초(石月草)!’ 겨울에는 벌레, 여름에는 풀이 된다는 동충하초(冬蟲夏草)는 들어보았지만 ‘돌달풀’이란 처음 듣는 이름이다. 석월초는 깊은 산속의 바위틈에서 자란다. 그것도 지장보살이 밟고 다닌 발자국에서 하얀 달밤에만 자란다고 한다. 밟히고 눌려도 환하게 미소 짓는다는 석월초이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달 밝고 바람 소슬하게 부는 밤이면, 석월초 그 여인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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