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부탄 수교 30주년 기념 특별연재 ⑤ 국민총행복지수 GNH

‘부탄’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따라오는 수식어는 ‘행복한 나라’ ‘행복지수 1위’일 것이다. 이미 온갖 미디어에서 부탄을 행복한 나라로 표현하고 있다. 심지어 요즘은 “부탄이 정말 행복한 거냐”는 의문이 제기될 정도로 ‘부탄=행복’이라는 수식이 성립한다. 도대체 무엇이 부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리고 부탄은 왜 행복할까.

나만 행복하면 행복 아니다
“국가가 국민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면 그 정부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부탄의 4대 선왕 직메싱계왕축이 인용하면서 유명해진 이 이야기는 사실 1629년 샵둥나왕남걜 스님이 부탄왕국을 건국하며 세운 이념이다. 그 이후부터 부탄의 모든 군주와 정부조직은 이러한 건국이념을 중심으로 국민과 국가에 봉사해왔다고 할 수 있다.

“국민총행복지수(GNH)가 국민총생산(GNP)보다 더 중요하다.” (1972년 부탄 4대 국왕)

2008년 부탄이 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의 민주주의로 전환하면서 만든 헌법 9조에는 ‘정부는 국민총행복지수를 성취하는데 필요한 모든 역량을 총 동원한다’는 구절이 있다. 또한 2009년 부탄 5대 국왕 직메케사르남걀왕축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국민총행복지수는 국민들이 물질적, 정신적 개발이 균형을 이루었을 때 가능하다. 외면적인 행복과 내면적인 행복은 함께해야 한다.”

체링톱게이 총리 역시 “우리는 행복이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단순히 ‘기분 좋다’는 감정의 느낌이 행복만은 아니다. 타인이 힘들거나 고통스러울 때 나만 행복하다면 그것은 행복이 될 수 없다”면서 “진정한 행복은 타인을 위하고, 모든 생명을 존중할 때 느낄 수 있다. 자연과 환경 속에서 조화롭게 살고, 지혜와 자비의 방편을 통해 마음의 본질을 찾았을 때 진짜 행복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은 자살률 세계 1위, 특히 청소년 자살률도 1위다. 게다가 OECD국가 중 노동시간도 가장 많을 정도로 소위 ‘불행한 환경’에서 국민들이 살고 있다. 연일 뉴스에 보도되는 것은 사회 지도층의 비리와 불평등이다. 부탄 4대 국왕이 우려했던, 즉 경제발전을 국가 정책기반으로 잡으며 발생하는 부작용인 빈부격차·환경파괴·이웃과의 단절 등을 고스란히 겪은 것이다.

행복위원회 심의로 정책 입안
부탄은 스님이 건국한 나라인 만큼 불교 가르침인 뭇중생의 생명사상을 정치이념과 국법에 적용시킨다. 국토의 60% 이상은 산림으로 유지한다는 헌법 6조가 있는가 하면, 국토 대부분이 산으로 이뤄진 부탄에서는 환경보호를 위해 터널을 뚫지 않는다. 고속도로가 없고, 공산품을 제작하는 공장도 없다. 울창한 산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벌목이 금지돼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탄소보다 산소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가 됐다.

또한 부탄의 모든 가축들은 천수를 누린다. 소·돼지·닭·염소 등 모든 가축에 대한 도축과 낚시가 금지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한 육신에 관한 계율인 ‘삼정육’을 지키기 위함이다. “내가 먹기 위해 죽이지 않는다”는 계율을 실천하고자 모든 육류를 수입하고, 많은 국민들이 채식주의를 고수한다.

한국에서는 그저 추상적이고 상대적이기만 한 ‘행복’이라는 개념을 부탄은 어떻게 체계적으로 국가 정책에 반영했을까? 수교 30주년을 맞아 한국부탄우호협회와 부탄문화원에 수없이 많은 강의요청이 쇄도한다. 사실 부탄은 불교적인 가르침을 정치학·사회학·경제학자들과 함께 수없이 많은 사회적 실험을 하며 이뤄낸 것이다. 그 결과 전 국민 무상 의료·무상 교육을 실현했고, 행복한 나라라는 인식을 심게 된다.

부탄의 행복 정책은 크게 4가지 기둥과 9가지 주제, 33가지 인디케이터(indicator)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기둥은 △평등하고 지속가능한 사회경제발전 △전통문화와 가치를 보존 △자연환경과 야생동물 보호 △리더의 모범과 좋은 통치다. 또 9가지 주제는 △심리적 웰빙 △여가활동 △공동체 참여와 활력 △문화활동 △국민의 건강 △교육 △생활수준 △모범적 정치 △생태환경이다. 인디케이터는 정규교육률·정부활동·영적만족도·기초인권 등으로 구성된다. 이를 기반으로 해서 모든 정책은 국가행복위원회 심의를 거쳐야만 한다.

부탄도 유토피아는 아냐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부탄을 방문해 체링톱게이 총리를 만나 국가정책으로 ‘행복’을 도입한 개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후 부탄의 보건복지부장관은 방한해 문 대통령과 회담을 하며 행복 정책 도입을 토론하기도 했다.

물론 부탄이 유토피아는 아니다. 분명 부탄도 세계화 물결에서 문제점들이 도출되기 시작했고, 최근 청소년 우울증과 인구 과밀화 등 도시적 문제점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국가 정책으로 믿고 있는 그들에게는 이런 문제를 충분히 슬기롭게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한편 부탄문화원은 부탄 국가행복위원회와 행복한연구소 한-부탄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한국인을 대상으로 부탄행복명상아카데미를 운영한다. 한국에서 2박3일의 워크숍 후 부탄 현지서 7박8일간의 GNH 행복명상 워크숍을 실시, 행복명상지도사 과정을 밟을 수 있다.

25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이어가는 히말라야 작은 왕국 부탄. 국왕과 리더가 국민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비단 한 종교나 국가만의 것이 아닌 인류 보편적인 가치로서 우리 모두의 의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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