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법교화하는 승가상(僧伽像) 구현을 위하여

무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2018년 올해는 조계종단 출범 56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20세기의 한국불교사는 종단의 역사입니다. 20세기 들어 정교분리시대를 맞아 국가가 전국의 사찰과 승려를 관리하던 체제에서 승려들이 자율적으로 사찰과 승려를 직접 관리하기 위해 종단을 설립하고자 노력했던 역사이고, 그 노력이 결실을 이루어 1962년 조계종단을 출범시켰고, 이후에 비약적인 불교발전을 이뤄낸 역사입니다.

조계종단의 설립은 나라 없던 국민이 정부수립을 통해 국가체제를 이룩한 것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조계종단이 이끄는 한국불교는 아직도 부족함이 많지만 이 또한 종단체제의 혁신으로 극복하고 도약해 나갈 것입니다.

한국불교계의 모든 노력 선두에는 승가가 앞장서야 합니다. 승가의 수행력과 교화력도 과거보다 더 높고 커야 합니다. 교육원이 올 한해에 역점을 두고자 하는 점도 승가의 수행과 교화활동을 보다 더 뒷받침하여 불교중흥을 이루는데 있습니다.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2018년 교육원의 주요 사업기조와 방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불교가 이 시대에 부응하는 전법교화를 펼칠 수 있도록 승가교육내용을 보충해 나가겠습니다.

21세기에 접어든지 어언 18년,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변화의 중심에는 과학기술이 있습니다.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무인수송, 3차원인쇄, 나노기술, 생명공학 등은 사회와 경제를 단숨에 바꾸고 있으며, 인간 삶의 정체성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있습니다.또한 한반도평화가 극도로 위협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73년간의 국토분단과 민족분열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지향하고자 하는 겨레의 염원이 어느 때보다 드높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한국불교가 담당해야 할 역할은 매우 큽니다. 불교도들이 앞장서서 한국불교의 특성인 호국정신과 대승보살정신을 발휘하여 남북의 갈등을 근본에서부터 해소하고 사회가 필요한 종교적 노력을 다해야 할 때입니다.

대승의 정신은 역사성과 구체성을 담보해야 합니다. 오늘의 한국사회는 지금 시대의 조건에서 발생한 희로애락과 고통, 불행이 점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화시대라 일컫는 바와 같이 한국과 세계는 일상생활에서부터 모든 분야가 나뉠 수 없이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한국불교는 전통의 기본교리에 입각하되 그에 머물지 않고, 이 시대의 언어와 이 시대의 방편으로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교화를 펼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대승10바라밀 중 마지막 네 가지 바라밀인 방편, 원, 력, 지바라밀은 당대의 세상실상을 제대로 알아 그에 대응하여 펼치는 방편과 원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육원은 이런 취지에서 승가교육내용과 프로그램을 오늘날 중생계의 속성과 실상을 잘 파악하고 그에 대응하는 교화력을 키우는 내용으로 더욱 확대해 나가겠습니다.

둘째, 승가교육내용에 불교의 종교성과 윤리성을 보다 강화하겠습니다

국가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불교신도들이 과거에 비해 많이 감소되었습니다. 조사방법, 현대의 탈종교현상, 불자들과 일반에게 제대로 다가갈 수 없는 취약한 사찰여건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한국불교가 언젠가부터 종교성을 외면하고 윤리성을 강조하지 않는데 있다고 봅니다.

불교에서 종교성이라 함은 삼보에 귀의하며 불보살신앙을 일상화하는 것입니다. 윤리성은 이웃과 사회를 살피고 돕는 자비보살행입니다. 불보살신앙(종교성)과 자비보살행(윤리성)은 대승불교교리의 특성이자 교화의 핵심방편입니다. 그런데 법회나 교화활동과정에서 삼보에 귀의하는 일과 불보살신앙을 강조하거나 권유하지 않고 오히려 기복신앙이라 하여 폄하하는 경향이 있었고, 자비보살행을 실천하는 대신 자신의 수행에만 전념하거나 교학적 탐구에 그치는 소승적 경향도 많았습니다.

그 결과 한국불교가 비종교적이며 비윤리적으로 그 위상이 축소, 왜곡되었고, 사회영향력이 감소되면서 불자감소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이제 교육원은 승가교육과정에서 종교성과 윤리성을 보다 강화하는 교육을 시행하겠습니다. 그리고 구족계를 받은 스님들이 불보살신앙과 자비보살행으로써 불자들과 일반인을 이끌 수 있도록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준비하여 뒷받침하겠습니다.

셋째, 출가자가 기본교육을 마치고 구족계를 수지하면, 이후 전법교화로써 수행을 삼는 승가상(僧伽像)을 구현하도록 적극적 노력을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첫 교화에 나선 후 가르침에 눈을 뜬 제자들이 60명이 되었을 때, 부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각 지방으로 흩어져서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가르침을 펼치라고 하셨습니다. 각지로 전법에 나선 제자들은 늘 ‘부처님의 가르침을 사유’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의 스승은 석가세존이시고, 세존께서는 인연법과 고의 소멸, 보시와 계행을 가르치신다”고 설법했습니다. 스님들의 전법은 그 자체가 수행이기도 했습니다. 불교는 불제자들이 각지로 유행(遊行)하며 전법에 매진한 결과 인도와 아시아 전역으로 퍼졌으며 오늘날처럼 세계종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정신에 따라 오늘날 스님들도 행자생활과 승가대학과정 4년을 이수하면 전법교화의 길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이는 수행 그 자체의 길이기도 합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전법교화과정에서 이뤄지는 대화와 문답, 토론의 내용은 성찰과 사유를 통해 수행을 더욱 완성시킬 것입니다.

이제 구족계를 받은 스님들은 전법교화를 행함이 기본 생활이자 책무가 되어야 하며, 그것이 현대사회의 승가상의 전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금년부터 승가대학과정을 마치고 구족계를 수지하는 스님에게 소정의 절차를 거쳐 2급 전법사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와, 스님들 연수과정으로 새롭게 도입되는 ‘승가결사체의 전법교화활동 연수인증 및 지원’ 제도는 ‘전법교화하는 승가상 구현’의 큰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넷째, 교육환경 변화에 따른 승가교육시스템 개편을 추진하겠습니다.

출가자 수가 감소됨에 따라 승단구성원 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연간 출가자 수가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완만한 추이로 감소될 것입니다.

현재 종단의 기본교육기관(중앙승가대학, 사찰승가대학, 기본선원, 동국대 불교학부)은 총 18개입니다. 연간 출가자가 현재보다 3~4배 많던 20년 전 이전에 설립된 숫자입니다. 그런데 출가자가 20년 전에 비해 3분의 1로 준 현실에서 교육기관 숫자와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교육효과와 예산상의 문제가 많습니다.

상당수 승가대학이 학년 당 학인수가 극소수로 줄어들어 교육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정도입니다. 반면 대학원에서 불교학을 전공하는 스님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르칠 교수는 점점 늘어나는데 배울 학인은 줄고 있는 현상입니다. 교수급 스님뿐만 아니라 학업과 수행과정을 어느 정도 거친 스님들은 승가대학의 학인스님 지도뿐만 아니라 불자와 일반인들에게 불법을 전하고 교화활동을 하는 역할로 나아가야 하고 종단은 이를 지원해야 할 때입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현대 한국의 사회문화특성(고령화사회, 고학력, 다양한 현대사회활동경력)이 출가자의 특성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승가교육내용과 교육방법의 개편을 필요로 하는 교육환경의 변화입니다.

금년에 교육원이 계획하고 추진하고자 하는 개편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러한 개편내용은 금년 한해의 사업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것입니다.

기본교육기관 숫자 축소조정 / 교수진 및 교학 연구자 적정수 유지대책 / 승가대학 축소에 따른 교수급스님 새 역할 부여 / 기본교육과정 학제 조정 과 구족계 수지 시점 조정 / 기본교육과정 이후의 다양한 전법교화활동 장려 / 기타

오늘날 한국불교가 사회적 기대와 요청에 충분히 부응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불교에 대한 사회적 평가도 다양합니다. 한국불교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조계종단의 역할과 책임은 매우 높다 하겠습니다. 이제 조계종단 스님들은 한국불교의 중흥이 조계종단의 훌륭한 운영과 출가승단의 역할에 달려있다는 자긍심과 책무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교육원은 종단의 모든 스님들이 충실한 교육과 수행을 통해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전법교화를 펼쳐나갈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노력을 경주하겠습니다.

종도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불기 2562(2018)년 1월 18일(목)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장 현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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