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은 질병이 아니다

서구적 복지 의미는 ‘욕망’ 전제
욕망 성취는 자본주의와 연계돼
노화, 의료기술로 극복 대상 인식
老死 본디 없어… 질병화는 癡心 

현대국가의 이념이 복지를 목표로 할 때 우리 사회는 보건과 장수에 대한 찬가로 무성했다. 100세 시대를 노래하며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한 혜택을 누릴 것이라 기대감에 부푼 것이다. 실제로 국가 행정체계에서 보건사회부의 명칭이 보건복지부로 바뀐 것을 본다면, 복지의 이념이 보건에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복지(福祉)라는 문자는 한 사람(一)의 입(口)을 만족시키는 정도의 밭(田)을 바라보는(示) 것(福)이거나 분수를 알아 멈추는(止) 행위를 가르치는(示) 것(祉)과 관련이 있다. 이처럼 복지의 원뜻은 동양적 또는 불교적 사고방식이 상당히 내재된 표현이다. 멈춤이나 바라봄, 그리고 이를 알거나 가르치는 실천이 복지의 근간이라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 

이에 비해 복지의 서구적 의미는 동양적 인식과 상당히 다르다. 영어로 표현되는 Health & Welfare의 의미는 말 그대로 육신과 정신이 튼튼하고 일상을 잘 지내는 것이라는 뜻이다. 서구적 복지의 의미는 욕망을 전제하고 있다. 이 욕망성취의 적극성은 소비와 연결돼 자본주의적 가치로 직접 한정된다. 

젊음에 대한 집착은 항노화(Anti-Aging)로 설정되며, 미용과 건강 그리고 정력의 신화를 양산하고 있다. 복지는 의료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장수시대를 찬탄하게 되는 것이다. 의료는 질병퇴치에 집중하며 건강을 복지이념의 한 축으로 제시한다. 그 결과의 하나는 노화현상을 질병의 일종으로 파악했다. 늙음을 극복할 대상으로 간주했기에 이를 퇴치하고 부정한다.

재주도 없으면서 소란하게 자랑하며 구호를 외친 일
지금에 이르러 누가 진짜와 허풍을 가릴 것인가
(伎倆無亂稱呼 至今誰解辨眞虛)
-〈선문염송(禪門拈頌)〉, H76, 405b8-9 

노화가 질병이라는 서구적 시선은 온당한가? 한 사람의 생애를 생로병사로 표현하는 불교적 관점은 연기적 흐름으로 일생을 파악하는 것이다. 노와 병이 없는 예외적 경우는 요절과 급사가 있을 수 있다. 대체로 태어남에서 비롯한 삶이 완숙과 쇠퇴를 거쳐 소멸에 이른다는 것을 이해해 반영한 것이다. 이 생로병사의 과정에서 늙음의 진정한 의미는 완숙의 다른 말이다. 노숙함으로 해석되는 노화현상을 질병으로 등치시키는 논리는 문제가 있다. 

늙음이라는 불편한 말이 저주가 아니다. 노화현상은 질병이 결코 아니다. 생물학적 의미에서 노화로 인해 면역기능이 저하되거나 생체의 항상성 반응이 느려지기에 질병에 노출될 기회가 많아지는 것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진행된다. 그러니 억지부리며 청춘을 붙잡거나 되살리려 애를 쓸 일이 아니다. 12연기의 흐름으로 한 생애를 들여다보면, 무명이라는 어리석음에 바탕을 둔 집착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업에 대한 과정의 연속이다. 

천만 봉우리 모두 다 다녀 보니 길들은 더욱 험해
멈추고 돌아 와서야 비로소 옛 고향(雲房)이 떠오른다.
(行盡千峯路轉高 肯歸方憶舊雲房)
-〈선문염송〉, H76, 410c6-7

제행이 무상하다는 점에서 무명도 없고 늙고 죽음에 이르는 노병사(老病死)가 없다고 반야심경은 일러주고 있다. 노사가 본디 없거늘 늙음을 질병과 동의어로 여기고자 하는 발상은 한마디로 어리석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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