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의해 차의 진수 드러난다

초의 선사 “차는 물의 神” 강조
茶人들, 좋은 물·차 선별 노력
정밀한 여건 완비해야 효능 확인

차를 다리는 광경, 차와 물, 불과 사람의 정성이 만들어낸 차의 진수, 옛 문인들은 차를 즐기는 이로움을 만끽하였다.
차를 다리는 광경, 차와 물, 불과 사람의 정성이 만들어낸 차의 진수, 옛 문인들은 차를 즐기는 이로움을 만끽하였다.

역사 이래로 차를 다루고 마시는 전반적인 행위가 인간의 일상생활에 미친 영향은 컸다. 이러한 사실은 차의 품성이 검박해 사람의 본성과 서로 닮았다고 인식했던 수행자나 문인들이 자신의 본연지성(本然之性)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정신음료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이들은 차를 마시며 느꼈던 즐거움을 드러낸 글을 지어 차 문화의 토층을 단단하고 풍요롭게 만들었으며, 다른 한편으론 이들이 차를 통해 자연의 원리를 터득하고자 했다. 그뿐 아니라 수행자나 도가, 문인은 차를 마시기 위한 다변화된 준비 과정이나 경험을 이론화해 수많은 기록물을 남겨놓음으로써 후대인의 차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정표와 통로를 넓고 깊게 열었다. 이에 따라 오묘한 차의 세계로 진입하는데, 과도한 시간 낭비와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곧바로 바른 길을 찾을 수 있으니 이는 잘못된 길로 들어가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는 편의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도 실익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현대인은 차를 바르게 알기 위한 노력, 다시 말해 옛사람들이 남긴 차에 관한 문헌 자료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열정과 이를 토대로 차의 이로움을 실증해 나감으로써 삶의 여유와 안도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물론 차는 이론적인 정보에 앞서 몸으로 익히는 실전이 더욱 중요한데, 이는 몸으로 터득한 차를 즐기는 묘미가 삶을 살찌게 만들기 때문이다. 

옛날 차를 즐긴 이들은 차를 통해 사물을 관조할 뿐 아니라 자신의 문예적인 이상을 실현했다. 이처럼 차는 자연의 순리와 하나가 된 삶을 만끽할 정신음료였다. 그러기에 이들은 한 잔의 차를 얻기 위해 좋은 차를 선별하고 좋은 물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는 찻물에 대한 품평의 기준을 세운 육우에게서도 드러난다. 그가 중국 여러 지역의 물을 이십천(二十泉)으로 분류한 후, 그의 품천에 대한 기준과 정의는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물론 융성한 차 문화를 이룩했던 고려 시대에도 찻물의 중요성을 인식한 수행승이나 문인들의 기록이 많았겠지만, 현존하는 자료는 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품천의 기준을 가지고 품수(品水)한 것은 여말선초의 인물 이행(李行, 1352~1432)이다. 그는 충주의 달천수(達川水), 한강의 우중수(牛重水), 속리산의 삼타수(三陀水)를 좋은 찻물로 분류해 이 시대의 품천에 대한 인식 수준을 가늠하게 한다. 

그렇다면 차와 물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초의 선사(1786~1866)의 <동다송>에 “차는 물의 신이요 물은 차의 체이다(茶者水之神 水者茶之體)”라고 한 것에서 나타난다. 바로 차는 물에 의해 차의 진수, 즉 색향기미(色香氣味)를 드러내기 때문에 물은 차의 근본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심신을 안정시킬 수 있는 정신음료로써의 차는 정밀한 제다 및 장다의 조건, 불, 다구의 여건이 완비돼야 차의 효능을 다 드러낸다. 이런 차는 몸과 마음의 불평(不平)을 고르게 해 심신을 안정시킨다는 전제하에서 좋은 차와 물은 선제적으로 조건이 되는 것이다. 물론 좋은 차와 물을 얻었다고 해도 불을 잘 관리해 센 불과 약한 불을 고르게 활용해 물을 끓이지 않는다면, 차의 현묘한 세계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기에 신라 말이나 고려시대처럼 가루차를 향유했던 시대에는 삼비(三沸)로 물을 끓여 차를 즐겼다. 하지만 잎차를 즐겼던 시대에는 물을 끓이는 법이 조금 변화해 오비(五沸)로 물을 끓여 차를 우려야 차의 진수가 드러났다. 가루차를 선호했던 시대에는 가루차를 다완에 넣고 끓인 물을 부은 후 격불해 거품을 내어 마시므로 막 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할 즈음이 가장 차를 다루기 좋은 상태가 된다. 한편 초의 선사는 차와 물의 관계를 정의해 “좋은 물이 아니면 차의 신묘함이 드러나지 않고 좋은 차가 아니면 물의 근본을 엿볼 수 없다(非眞水 莫顯其神 非眞茶 莫窺其體)”고 했다. 

그가 말한 진차(眞茶)와 진수(眞水)란 차와 물의 근원이 잘 드러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상태를 의미한다. 차의 격조는 맑고 시원하며 온화하고도 싱그러운 향과 감미(甘味)가 드러나야 하며 기운 생동한 차의 기세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고금(古今)을 관통하는 차의 품격이며 가치이다. 

이런 차를 즐기는 사람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명나라 황족 출신 주권(朱權)은 <다보(茶譜)> 서문에서 “차란 시흥(詩興)을 돋우며 깊은 산속에서 몸을 숨길 수 있게 하며, 잠을 쫓아내 천지 사이에서 자신의 형상을 잊게 할 수 있다(茶之욇物,可以助詩興而雲山頓色,可以伏睡魔而天地忘形)”고 했다. 이어 “고상한 담론을 더욱 고조시키며 만상이 서늘함에 놀라니 차의 공덕이 위대하다(可以倍談而萬象驚寒 茶之功 大矣)”고 말했다. 

실제 차는 “대장을 이롭게 하고 쌓인 열을 제거하며 담을 삭이고, 기운을 내려 준다. 잠을 깨게 하고, 술을 깨게 하며 소화를 돕고, 번뇌와 기름기를 제거해 상쾌한 마음을 일으키는데 도움을 준다(食之能利大腸,去積熱,化痰下氣,醒睡,解酒,消食,除煩去,助興爽神)”고 했다. 그러므로 차는 불로장생의 묘수를 담은 오묘한 물질인 것이니 한가할 여유가 없는 삶에 노출된 현대인에게는 더욱 필요해진 음료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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