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입산출가일은 2011년 9월 2일이다. 다른 스님들도 출가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제법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날은 나의 육군 병장 만기 전역일이기 때문이다.
군 생활을 시작하는 훈련소 5주 동안 나는 주말에 열리는 불교 종교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했고, 마지막 5주차 때는 삼귀오계를 수지하고 불자가 되었다. 광평(廣坪)이라는 법명도 받았다. 동기들이 햄버거와 여고생 찬양단에 흔들려 교회나 성당으로 흩어져 갈 때도 나는 꿋꿋이 불교 종교행사에 출석해서 간식으로 나온 백설기를 꼭꼭 씹었다. 주변에서는 내가 모태 불교신앙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수계식 날 두 눈을 조금도 깜빡이지 않고 연비(燃臂)를 받는 내 모습을 보고, 입대 전에 혹시 어느 절에 계셨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도 그저 말 없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왜냐하면 다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그저 2년에 한 번 사단급에서 뽑는 불교 군종병이 되어 군 생활을 조금 편하게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고백하자면 생애 첫 수계식에서 나는 영 불량한 불자였고, 삼보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오계는 지킬 생각이 없었다. 군대에서 만난 불교의 덕을 좀 볼 생각으로 신실한 불자를 연기하는 내 모습을 부처님께서 보셨다면 아마 실소를 금치 못하셨을 거다. ‘요놈 네가 똑똑한 줄 알지. 어디 한번 두고 봐라’ 하셨던 걸까. “어어” 하는 사이에 나는 그 뒤로 꽤 많은 수계식을 치르게 되었다. 출가해 사미계를 받고, 보살계를 받고, 비구계를 받고 어느새 수계식을 진행하는 처지가 되기까지는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작년 10월, 매년 하반기 부산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불교행사인 팔관회 때의 일이다. 범어사 포교국장 소임을 보고 있던 나는 ‘선재동자 수계법회’의 교수아사리로 등단하게 되었다. 팔관회 3일 행사 중 첫 공식행사였기 때문에 나도 아이들도 많이 긴장했다. 선재동자 문화전승단으로 활동하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야외수계법회였는데, 어린아이들 특성상 최대한 연습을 집중해 짧게 해야 한다는 것은 다년간의 어린이법회 지도를 통해서 숙지하고 있었다.
마이크를 잡고 예행연습을 위해 아이들을 무대 위로 올렸다. ‘여러분의 연습 태도에 따라 앞에 있는 스님은 좋은 스님이 될 수도 있고 무서운 스님이 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입으로 떠들면서 아이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눈에 담았다. 집중한 얼굴도 있고, 산만한 얼굴도 있었다. 또랑또랑한 눈망울도 있었고, 졸린 눈빛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얼굴이 십수 년 전 처음 수계를 받을 때의 내 얼굴과 같았다. 씨앗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 맺어 서리와 눈바람으로 묻어 봄에 다시 싹이 움트는 그런 인연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두가 귀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아주 오랜 세월 아이들을 이 자리에서 만나기를 기다려온 사람이 된 것처럼. 부처님도 활짝 웃고 계신 날이었다.
이 봄
다시 싹이 움트는 인연! 이란
글귀에 공감합니다 홧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