若有人兮山之阿(약유인혜산지아) 被薜荔兮帶女蘿(피벽려혜대여라)旣含睇兮又宜笑(기함제혜우의소) 子慕予兮善窈窕(자모여혜선요조)乘赤豹兮從文貍(승적표혜종문리) 辛夷車兮結桂旗(신이거혜결계기)被石蘭兮帶杜衡(피석란혜대두형) 折芳馨兮遺所思(절방형혜유소사)누군가 있는 듯한 산모퉁이에/ 벽려 옷을 입고 덩굴 띠를 두르고/정겹게 곁눈질하며 미소를 짓는/ 그대 내 아리따운 자태 좋아서여라/붉은 표범을 타고 얼룩 너구리 데리고/ 목련 수레에는 계수나무 깃발을 매었네/석란 옷 입고 두형 띠 두르고/ 향기로운 꽃 꺾어 사모하는 이 드리고파중국의 고전
2021년 여름은 몹시 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전 겨울에는 기록적인 한파로 부산의 많은 지역의 수도관이 터져버렸는데, 뒤이은 여름은 견디기 힘든 더위가 사람들을 괴롭혔다. 이 해에 나는 부산 영도 해련사에서 탑을 쌓으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5층의 석탑은 아주 천천히 올라갔다. 날씨만이 불사는 더디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탑이 한층 한층 높아질 때, 고민과 걱정은 그림자처럼 따라서 길어지는 나날들이었다.탑은 아름다웠다. 돌은 귀한 경주석을 어렵게 구했다. 모양은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을 본떠 만들었는데, 소실된 상륜부를 재
〈상윳다니까야〉 절반경은 널리 인용되는 친구에 대한 짧은 경전이다. 아마도 경전이 설해진 날은 지금처럼 봄꽃이 완연하게 흐드러진 멋진 날이 아니었을까. 아난 스님이 즐겁고 활기찬 목소리로 부처님께 말씀드렸을 것이다.“스승님! 좋은 친구만 사귀어도 깨달음의 절반은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아이고 우리 아난 스님! 내 생각에는 좋은 친구만 사귀어도 깨달음의 절반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왜요? 스승님 곁에 저 같은 좋은 친구가 있으니까 이렇게 좋은 봄날에 꽃구경도 모셔다드리고 커피도 사다드리고 그런 거 아
나의 입산출가일은 2011년 9월 2일이다. 다른 스님들도 출가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제법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날은 나의 육군 병장 만기 전역일이기 때문이다.군 생활을 시작하는 훈련소 5주 동안 나는 주말에 열리는 불교 종교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했고, 마지막 5주차 때는 삼귀오계를 수지하고 불자가 되었다. 광평(廣坪)이라는 법명도 받았다. 동기들이 햄버거와 여고생 찬양단에 흔들려 교회나 성당으로 흩어져 갈 때도 나는 꿋꿋이 불교 종교행사에 출석해서 간식으로 나온 백설기를 꼭꼭 씹었다. 주변에서
대학생 지도법사를 하면서 꿈꾸는 일들이 많아졌다. 대학생들에겐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스펀지처럼 받아들이고, 생각보다 더 기발한 아이디어와 진중한 사유 체계가 이들에게선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교를 대하는 태도가 스님인 나로 하여금 스님의 상을 벗게 만든다.2024년을 시작하며 대학생 법우들과 해외봉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종단에서 비영리단체를 대상으로 불교문화행사 국고보조금 지원사업 공모가 있어 도전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주변에 10년 넘게 스리랑카 해외봉사를 꾸준히 하고 있는 스님이 계셔서 조언을
나의 대학 시절은 불안했고, 초조했고, 쓸데없는 감정 소모가 많아 지쳐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어려워진 집안 형편에 사회적으론 IMF까지 터졌으니…. 시대와 내 형편을 고려하면 빨리 안정적인 취업을 하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나의 기질은 인간과 삶에 대해 좀 더 사색하고 고민하고 나누고 싶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인간에 대해 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란 확고한 신념이 있었던 터라 다짜고짜 사회로 내몰리는 내 처지에 저항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우연히 신문에 난 사찰 수련회 광고를 봤다. 4박 5일에 부담 없는 비용이라
성신여대 불교동아리는 5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동아리가 반백 년의 역사를 갖는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이는 동아리 활동이 단순히 취미가 아닌 삶의 나침반으로써 사회화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며, 결정적으로 법우들의 인생과 인간관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뜻일 것이다. 실제로 동문 법우 중에 비구니스님이 되신 분도 있다. 그만큼 성신여대 법우들은 동아리 활동에 진심이고 적극적이다.그러나 실질적인 동아리 활동에서 법회 시간은 매우 짧다. 일주일에 한 번, 약 1시간의 법회가 전부다. 그나마도 학기 중에만 하고, 시험
처음 성신여대 대학생 법회를 맡고 솔직히 많이 긴장했다. 출가하고 20여 년간 노보살님들만 만났지 대학생을 상대해본 일이 없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여학생들은 예민하지 않을까…’ 한아름 걱정을 안고 캠퍼스로 향했다.나름대로 준비한 명상과 교리 설명, 마음 나눔 등 한 시간여의 법회를 마무리하며 법우들한테 소감을 물어봤다. 다행히 긍정적으로 대답해준 덕분에 안도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뒤풀이 식사자리로 향했다. 그때부터가 고난의 시작이었다.“스님, 뭐 좋아하세요?” “좋아하는 색깔은요?”라는 물음으로 시작한 사석은 ‘스님의
“스님! 저희 식구들이 편안해졌어요.”“무슨 일이 있었나요?”“남편이랑 대화가 되기 시작했어요.”“그동안은 어땠는데요?”“결혼하고 처음에는 대화가 됐는데 언제부터인가 소통이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 뒤로는 대화가 안 된다고 생각하고 시도하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명상공부하면서 제가 남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나봐요.”“그랬더니 어떤가요?”“이제 남편과 대화가 되니 관계가 더 편해졌어요. 자녀들과도 대화가 편해졌어요.”“어떤 면이 달라졌나요?”“돌아보니 주로 제가 말을 거의 다 했던 것 같아요. 대화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얼마 전 설이었다. 합동차례를 지내는 가족이 많아져 아이부터 어른까지 절은 여느 때보다 북적였다. 1년에 두 차례, 여러 가족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날을 맞아 입춘 때 준비해둔 입춘부와 소원성취부를 나눠주며 안부를 물을 때였다.“스님! 잠시만 대화할 수 있을까요?”점심시간이 지나고 여러 사람과 인사를 나누는 와중에 한 보살님이 다가와 물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안색은 어둡고 무언가로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이미 정해진 일정들이 있어 갑자기 짬을 내기 부담스러웠지만 상담을 뒤로 미루기엔 보살님의
“스님! 스님한테 할 이야기가 있어요. 잠시면 돼요.”“그래요? 그럼 지금 할까요?”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시작된 팔순 노보살님과의 대화.“스님!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이것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요.”“무슨 일이신데요?”내용은 대강 이렇다. 남동생이 요양병원에 가게 됐는데 이것이 너무 가슴 아파서 괴로운 심정이고 잠도 편히 못 주무신다고. 당신이 원하는 것은 시누이가 남동생을 요양원에서 나오게 하고 집에서 돌봐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원한다고 해서 꼭 그렇게 된다는 법이 있겠는가. 잠시 이야기를 들으며 노보살님의
저녁이면 전화가 울립니다. 며칠마다 오는 전화입니다. 받아야 하나 잠시 망설입니다. 그렇게 몇 번을 고민하다가 받습니다.“스님, 제가 ○○를 가져다 놓았는데 잘 드시고요. 저는 스님에게 저를 맡기고 삽니다. 건강 잘 챙기셔야 해요.”연세가 많은 어르신의 당부입니다. 너무 감사한 마음에 “네,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라고 인사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자주 이어집니다. 조금씩 오는 전화가 부담이 되어갑니다. ‘사랑 받는 자식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사랑을 받을 만큼 저는 그분을 위해 충분히 마음을 내어
얼마 전 최초로 영남지역 대학생 연합 템플스테이와 수계법회가 통도사에서 봉행됐다. 그동안 이 아름다운 도량에서 대학생들의 동아리 연합 템플스테이나 연수를 염원하고 희망했던지라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나도 한때는 호기심과 열정,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용기로 청춘을 살았다. 배고픈 불교학도들에게 공양을 손수 챙겨주며 따뜻하게 보살펴주시는 스님들의 마음에 감화되어 그 시절에 금강경 육조단경을 접하고, 결국에는 출가도 하게 되었다. 이제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대학생들을 데리고 통도사로 들어가니 20대로 돌아간 마냥 들뜨기도 했다.74
어느 날 해질 무렵 개천가를 거닐고 있었다. 징검다리 저 멀리에서 자전거를 타던 다문화가족 초등학생이 나를 보더니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하며 건너왔다.“스님은 어디 살아요?”“절에 놀러가도 되냐”고 물으면서 옆에 있던 엄마와 어린 동생을 뒤로한 채 졸졸 따라오는 아이.“스님! 삭발은 왜 해요? 친구는 있어요? 뭐 먹고 살아요?”호기심 가득,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질문을 퍼붓는 아이가 새삼 반가웠다. 아이는 “나중에 친구들을 데리고 오겠다”며 웅장원을 둘러보고 갔다. 다시 찾아올 아이를 위해 법당에 간식 코너도 만들고, 냉장고
2020년 코로나19가 시작돼 점차 기승을 부리던 따뜻한 봄날에 산문 밖을 나섰다. 고여 있는 물은 썩는 법이라. 〈금강경〉과 〈법화경〉을 짊어지고 흐르는 물이 되어 보살행을 몸소 실천하고자 만행을 계획했다.하산하던 날, 온 대중은 만행을 결정한 나를 의아해했다. 선방이나 율원을 간다면 능히 격려하며 보내줄 터이나 홀로 만행을 한다고 하니 은사스님은 상좌가 풍진 세상으로 들어가 행여나 악업에 물들까 전전긍긍하셨다. 그럼에도 나의 결정은 단호했다. 번잡한 시장에서도 그 마음을 청정히 하면 그곳이 곧 절이고 수행자라 하지 않았던가.화광
2023년 7월 통도사 대학생 전법위원으로 위촉된 이후 여름내 나의 화두는 영산대학교 학생들에게 불연을 맺어주는 것이었다. 물론 웅장원이 통도사포교소로 등록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대학생·청년 전법에는 제법 부담이 컸다. 그래도 불교의 희망을 만드는 불사라 생각하고 뛰어들었다.두 달여가 지난 2학기 개강일,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아침 8시에 교내로 들어갔다. ‘불교동아리 창립 회원모집’ 안내판을 걸어놓고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며 친절히 홍보하려던 참이었다.더위는 여전한 상황에서 교내로 셔틀버스 한 대가 매연을 뿜으며 들어